입력 : 2022.10.28 14:46

늘부장 회사는 제조업 기반의 회사라 야유회를 하면 전 직원이 한 날짜에 가곤 했다. 그런 야유회가 코로나로 인해 20~21년은 취소되었다. 코로나가 전염성이 강하기에 혹시나 단체 모임으로 인해 코로나가 확산할까 봐 염려해서였다.

십여 년 전의 야유회만 하더라도 왜 가는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참 의아해했다. 그 당시는 야유회를 가게 되면 부서별로 1박 2일을 많이 하곤 했다. 업무적으로만 대하던 동료와 회사 밖에서 맑은 공기와 좋은 경치를 보면서 업무 외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직원들 간에 서로 몰랐던 부분, 오해했던 부분을 보다 쉽게 개선한다는 게 본연의 취지였다.

그러나 1박 2일의 야유회를 살펴보면 딱히 그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를 늘부장은 많이 봐 왔다. 오후 4~5시경 야유회 장소에 도착하면 가벼운 운동, 예를 들면 족구를 하고 난 후 저녁을 먹는다. 운동 뒤라 어떤 음식을 준비하더라도 다들 맛있게 잘 먹는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야유회의 본연의 취지를 살린다.

문제는 저녁 식사 후에 발생한다. 저녁 식사 후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면서 회사에서 보지 못한 동료의 본모습을 때론 볼 수 있다. 평소에 말이 없던 동료가 소주가 서너 잔 몸속으로 들어간 순간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된다. 그렇게 조용하던 동료가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그동안 회사에서 상사 및 동료에게 품고 있었던 불만이 알코올 힘을 빌려 표출한다. 심지어는 십 원짜리를 격하게 사용하면서….

사진제공=박진훈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여러 사람이 생활하는 조직에서 소주 서너 잔에 이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저런 행동을 할까 이해된다. 야유회에서만 볼 수 있는 동료의 색다른 모습을 체험하는 것도 야유회의 장점이라고 늘부장은 생각했다.

여기까진 OK. 그러나 저녁식사가 길어지고 늘어선 빈 병의 줄도 점점 길어지면서 대부분 취기가 올라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뒤엉켜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그 상황이 끝날 때쯤 누군가 고스톱 혹은 포커를 한번 하자고 제안한다. 긴긴밤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목소리 큰 김 부장의 얘기에 다들 빼기가 뭐해서 다 같이 참여한다. 취기로 고스톱, 포커를 하면서 시작은 했지만 끝나는 시간은 도통 알 수 없다. 돈을 많이 챙긴 사람은 더 챙기려고 하고 잃은 사람은 잃은 걸 만회하기 위해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밤을 꼬박 새운다.

다음 날 새벽까지 하다가 다들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새벽 4, 5시에 눈을 붙인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뜬 10시경 눈을 비비면서 잠을 깬다. 그리곤 피곤으로 아침을 들기엔 힘들기에 근처 해장국 집에 가 속풀이를 하고 12시경 헤어진다. 이게 10여 년 전 회사 야유회 분위기였던 걸 늘부장은 기억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겠지만...

그러나 올해 늘부장의 회사 야유회는 바뀌어도 한창 바뀌었다. 코로나가 바꾸어 버린 분위기에 플러스 소위 말하는 ‘MZ세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야유회였다. 요즘은 워낙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야유회에서 1박 2일의 아까운 시간을 뺏기는 것을 싫어하는 ‘MZ세대’ 직원들은 거의 100% 당일치기를 주장했다. 회사는 물론 입김(?)이 센 ‘MZ세대’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했다.

늘부장은 비록 선임부장이지만 ‘MZ세대’에 부응해서 1박 2일은 반대했다. 옛날만큼 술로서 밤새울 자신도 없었고 이젠 정말 건강을 챙길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구팔팔일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늘부장이 속한 부서의 야유회는 오전 10시에 팀원들이 다 모여 가볍게 볼링을 한 게임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 후 오후 2시에 헤어졌다. 이런 야유회를 다들 좋아했다. 꼭 굳이 1박 2일을 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하는 야유회보단 질적인 면에서 훨씬 좋았다.

야유회의 방식은 직원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형태로 진행이 되어야 야유회의 진정한 목적인 직원 간의 진솔한 소통과 보다 향상된 팀워크를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모처럼 개선된 야유회의 모습을 보고 늘부장은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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