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졸리니까 잠을 잔다.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졸리니까 잠을 잔다.”
일찍이 옛 선사들은 ‘깨달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이 말에, '도대체 뭐가 ‘깨달음’이라는 건가?'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긴 고승이나 선사, 옛 선인(仙人)들은 우리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느라, 이렇게 쉬운 비유를 들곤 했는데, 그래도 보통 사람들한테는 이 쉬운 비유조차 어렵긴 매한가지지요.
더욱이 현대인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고, 어디 밥뿐인가요? 떡도 먹고, 빵도 먹고, 과자도 먹고, 차도 마시고, 엄청 많이 먹잖아요.
잠을 자는 것도 그렇습니다. 수험생은 물론이고, 일 때문에 졸려도 잠을 자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갖은 애를 쓰는 분들이 얼마나 많아요? 반대로 잠을 자고 싶은데도 잠이 오지 않아서, ‘불면증’에 걸려 괴로워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아요?
그러니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졸리니까 잠을 잔다’는 말은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비범(非凡)한 분들은 가장 단순한 일이 가장 어렵다는 가르침을 많이 주시지요.
그리고 그렇게 비범(非凡)의 경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 자연의 흐름이나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됩니다. 공자께서도 나이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고, 나이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하셨잖아요.
물론 이 경우도 ‘잘 나이 든’이라는 단서가 붙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인간이 추구하는 게 ‘행복’이고 보면, 행복을 주는 것들,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참 단순합니다. 실제 경험상 복잡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질 때가 많지요.
밥을 먹을 때 행복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사람입니다. 배가 고플 때는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하고 밥 먹는 데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밥을 먹을 때 가장 맛있게 밥을 먹는 방법은, 밥을 먹는 데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밥을 먹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밥을 먹기도 전에 밥을 먹고 나서 할 일을 생각하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후딱 ‘해치우는’ 경우도 있고, 또 TV를 보면서 밥을 먹거나,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밥을 먹는 경우도 많지요?
심지어 밥을 먹는 게 고통일 때도 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불편한 사람이면 밥을 먹을 때 밥에 집중하지 못하고, 온통 신경이 그 불편한 사람에게 집중돼서 결국은 식사 후에 소화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지요. 그래서 아무리 진수성찬(珍羞盛饌), 산해진미(山海珍味)여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 수 있고, 반대로 그야말로 김치만 해서 밥을 먹어도 행복한 식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1인 가구가 많아서 혼자 외롭게 밥 먹는 게 싫어서 TV를 켜놓고 식사를 하거나, 말 그대로 그냥 끼니를 때우는 분들도 많은데요. 물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인 건 맞는 말이지만, 혼자 식사를 할 때도 가장 맛있게 행복하게 식사를 하는 방법은, 식사에 집중해서 식사를 하는 겁니다. 밥에 집중하면 외로움이 아니라 밥 맛을 음미하게 되지만, 외로움에 집중하니까 일단 혼자 밥 먹는 게 싫어지는 겁니다.
맛 대결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맛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표정을 보셨나요? 입에 음식이 들어가기 전에 음식을 보고 냄새를 맡다가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음식을 씹는 데 집중하지요. 얼마나 집중하는지 미간에 소위 ‘진실의 주름’까지 잡히잖아요.
그러니 이 복잡한 현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심플(simple)하게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졸리니까 잠을 자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