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명 겨울입니다. 어제, 저녁부터 한파가 밀어닥치더니 아침 기온이 영하 7도라 합니다. 어제 종일 영상 8도였으니 하루 사이에 15도나 곤두박질친 셈입니다. 옷을 주섬주섬 찾아 입고 둘레길로 나가볼까 하여 거실 창가 앞에 섰습니다.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을 뚫어지라 내다보지만, 산을 오르는 이도 산을 돌아 걷는 둘레길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까치와 까마귀 떼들의 영역 싸움에 바람 잘 날 없던 숲이 오늘따라 조용합니다. 웬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까치들은 흔들리는 나목 꼭대기에 웅크리고 앉아 여린 햇빛 바라기 중인데 까마귀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참 별일도 다 있다 싶습니다.
산에 오르는 이도, 둘레길에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으니 나도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소파에 엉덩이 붙이고 하루 종일 있기는 더욱 싫습니다. 모자 달린 다운 코트를 걸치고, 장갑까지 찾아 끼고, 아파트 옥상에 올랐습니다.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지나오며 내게 기쁨을 주었던 텃밭 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휴면기에 들어간 풍경이 정겹습니다. 누군가 마늘 씨라는 걸 주어 심어놓은 텃밭 상자 앞에 섰습니다. 잎이 뾰족뾰족 내밀었는데 얼지 않았을까 슬며시 엎드려 만져 봅니다. 얼지 않고 파릇파릇 기운차게 자라고 있습니다. 대견합니다.
얼어 죽을까 봐, 커다란 화분에 방한복을 둘둘 말아 입은 채 서있는 감나무를 올려다봅니다. 감나무 앞으로 다가가 팔을 위로 뻗어 봅니다. 손끝보다 훨씬 자라 있습니다. 옥상에서 키우는 감나무인데 너무 크면 곤란합니다. 해서 늘 ‘잘라 줘야지.....’ ‘잘라 줘야지.....’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가지를 조금 잘라 줘야겠습니다. 예전엔 길 가다 가지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왜 저리 아까운 나뭇가지를 잘라내나 의아했습니다. 요즘에 안 사실은 나뭇가지가 웃자라면 여름에 너무 무성해지고 그러면 나무가 자라는 데도 나쁘다고 합니다. 그걸 이제는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용기를 내, 가위를 들고 싹둑싹둑 감나무 나뭇가지를 잘랐습니다. 화분에 심은 감나무라 두 팔을 벌려 내 팔 손끝까지만 키우기로 했습니다. 하긴 올해 심은 감나무라 자를 거라고는 하늘로 치솟은 나뭇가지 서 너 가지와, 감나무 수형을 생각해 감나무 아래쪽 나뭇가지 몇 개뿐입니다. 지금 가지치기하면, 나무가 자라기를 멈춘 시기라 가지 친 자리의 상처도 잘 아문다고 하니까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가지치기를 하고 돌아서려다 얼어 죽지 말라고 화분을 둘둘 싸 준 감나무 방한복도 매무새를 다시 만져 주었습니다. 이만하면 감나무의 겨울나기 준비는 완벽하니, 분명 내년 봄에는 연둣빛 새싹이 피어나겠지요.
잘려 나간 감나무 나뭇가지를 주섬주섬 주으며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깊은 겨울이 오기 전에 제 마음속 가지치기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웃자란 마음속 나뭇가지를 제대로 쳐내버린 기억이 없습니다. 남몰래 키워나간 욕심의 가지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삐죽삐죽 삐어져 나온 교만의 나뭇가지는 얽히고설키어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옹이로 뭉쳐진 상심의 나뭇가지 또 한 여기저기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미련의 나뭇가지는 또 어떻고요. 이제는 뭉치고 뭉쳐 썩어 문드러졌는데도 그냥 가지고 있으니 늘 머리가 어지러울 수밖에요.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키워 온 것들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하여, 내가 만들어 낸 웃자라고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잘라야겠습니다. 채 정리하지 못한 것들도 이 겨울에, 이 계절에, 조용히 천천히 쳐내고 새봄을 맞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