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오늘은 내일보다 젊은 날
나이 들수록 내 나이가 실감이 나지 않듯이, 언제부턴가 거울에 비치는 주름진 내 얼굴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거울을 자주 보던 분들도, 나이 들수록 거울을 자주 보지 않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내 마음에 기억되는 나의 예쁜 모습은 젊었을 때 모습이어서, 거울 속에 턱선이 늘어지고 입가에 팔자주름이 진 내 모습을 보면
“누구세요?”
하고 묻고 싶어 지기 때문이니까요.
그나마 거울 보는 건 잠깐이지만, 사진은 결과물로 남게 되는데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진 찍는 게 별로 즐겁지 않게 됐다는 분들도 많으세요. 사진을 보게 되면 그 사진에 담긴 사연 전체를 추억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자글자글한 주름부터 인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즐거운 추억을 담은 사진 속 주인공이 나라고 해도, 그 주인공더러
“누구세요?”
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니까, 그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에 담긴 추억을 온전히 내 것으로 즐길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나이 들어서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항상 내일 보다 젊은 날’이거든요. 사진이 찍기 싫어진 이유는 ‘오늘의 내 모습이 예전의 모습보다 보기 싫다고 느껴져서’인데, 오늘 사진 찍기를 미루면 나중에는 내 모습이 지금보다 더 나이 든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사진첩이나 휴대폰 사진 파일들을 들춰보시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주름살 때문에 찍기 싫다고 하면서 찍었고, 그 후에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진인데, 몇 년 지나서 보니까 ‘그땐 그래도 지금보다 예뻤네’하고 생각되는 사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 마음, 내 생각의 기준입니다. 나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과 생각의 기준은 과거에 있기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거니까요.
아시다시피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계속 흘러갑니다. 오늘이 지나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면, 오늘은 또 어제라는 과거 속에 파묻히게 되지요. 그러니 현재를 즐기는 게 최선입니다.
축구 경기에서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골 하나 넣고 나서 거창하게 세리모니를 하면서 그 기분에 취해있다가 상대의 기습 공격을 받아 골을 잃는 경우가 흔하잖아요. 또 실수를 했어도 얼른 떨쳐내고 현재 전략과 전술을 정비해서 동점을 만들고 역전을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경기에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지요.
그만큼 흘러간 과거는 더 이상 이제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소관이 아닌 일에 매달리다간 현재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미래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흔히 추억은 미화된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힘들었던 과거도 시간이 지나 떠올릴 때는 힘들었던 기억은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그건 아마도 현재를 잘 살아내면서 미래를 잘 준비하라는 조물주의 배려인 것 같아요. 그러지 않으면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현재를 잘 살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조물주의 배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 내 모습이 예전 내 모습보다 못하다고 탓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또는 오늘 사진 렌즈가 포착한 내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아름다운 젊었을 때 모습보다, 또는 예전 사진에 찍힌 내 모습보다 덜 예뻐도, 현재의 모습을 사랑하면서, 당당하게 사진을 찍으시기 바랍니다. 거울을 볼 때도 ‘오늘 주름이 늘었네’ 탄식하지 마시고, ‘그래도 오늘 참 예쁘네’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나의 시선, 나의 마음, 나의 생각은 늘 현재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누리면, 이런 행복한 현재가 쌓여 나의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행복한 인생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잘 아시지요?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