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앉아 녹차를 마시다가 탁자 위 국화를 본다.
피거나 져야 할 때를 모르는 국화.
꽃 한 잎 찻잔에 담아 빙그르르 비스듬 흔든다.
지구.
지구 따라 도는 물결 두 모금 삼키며 서쪽 하늘 노을도 본다.
하늘.
그래, 나의 지구와 또 하늘이다.
감사하다!
지금 앉은 곳이 곧 세상의 중심이다.
내 지구 중심에 앉아
오늘도 하루 함께 지낸 내 지구에게 말을 건넨다.
지구.
내가 지구?
내가 지구니까 이렇게 감사드릴 수 있다는 것?
내 주위 것들을 느낄 수 있으니 감사드려야 한다는 것?
허!
그래 감사, 감사하다.
그 감사한 만큼 내 것을 내놓아야 함에 고개 한 번 더 숙이다.
내 것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없는 다시 미안한 오늘지만.
내가 먼저, 너도 먼저,
중얼거리는 소리만 지구에 퍼진다.
나를 선뜻 먼저 내놓지 못하니 그저 고개 숙일 수밖에.
그래도, 지구에게 감사하다.
오늘을, 또 이 지금을, 지구가 내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
그렇다, 다시, 고마운 하루가 이렇게 지난다.
오늘 같은 날은 한두 번 올까?
아니,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 참 쉬운 답이다.
차 한 모금 끝까지 마시다가,
국화 사이 노을을 물끄러미 끝까지 보려다가,
뭐 다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본다.
다른 일이 생기길, 그래서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찻잔을 다시 돌리다가
오늘이 담긴 빈 잔이로다 그래도 돌리다 보면
반드시 누가 움직이는지 내가 일어서든지 하리라.
내 웃음소리를 흉내 내는 듯.
그래, 이도 지구에 있다는 즐거운 소리, 맞다.
내 안에 있는 건
쓸모 있든 없든 깨끗이 비우라는 소리라니, 맞다.
숨을 멈춘다.
순간, 이때 하필이면 멈추는 지구다.
참 고맙게도, 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멈추면 멈추는 지구.
고마운 지구다.
뭐 그렇다면, 지금 또
모든 것은 나로부터 다시 시작거린다.
지구에 있는 즐거움이 새로 몸으로 들어오는 시간인 것.
계속 숨을 멈추고 찻잔 속에 내 시간을 채운다.
국화잎도 잘 보이게 채운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넣어야 할지 머뭇거린다.
허, 나는 무척이나 욕심꾸러기다.
지금 멈추어야 할까?
웃다가 멈추다가 몸을 낮게 낮게 찻잔 속으로 숙였다.
찻잔에 넣어둔 국화잎이 마를 때까지 움직거리지 않았다.
모두는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또 우긴다.
우길수록 웃음도 숨도 멈추길 바라며
은근슬쩍 찻잔 속을 노려보는데, 하하
또 멈추는 지구.
그래, 나보다 더 고마운 지구다.
지구야, 더 숨 멈출까?
음, 멈춰.
숨 멈추고도 웃어?
응, 그래.
어제처럼?
응, 마지막에만 웃어.
오늘도
순간마다 멈추다 웃는
멈춤과 기쁨을 알게 해 준 내 지구에 감사하다.
이렇듯 나는 홀로 국화차를 마실 때만
지구에 대한 감사의 묵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묵념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