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인간의 전쟁사로 비춰본 기후 위기

  • 숭실대학교 1학년 이서진

입력 : 2023.06.14 15:00 | 수정 : 2023.07.05 15:12

흔히 인간을 ‘지구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라고 한다. 인간의 활동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지구를 점차 아프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바이러스라는 표현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 바이러스는 해로울지언정 해가 없거나 이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600만 년간 지구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바이러스보단 기생충이 어울리지 않나 싶다. 기생충은 적당히 있을 땐 괜찮지만, 너무 과해지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이 배출한 배기가스로 지구의 열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고열이 인간 몸속의 단백질을 녹여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듯, 지구 온난화 역시 지구의 면역체계를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특정 종족이 과하게 많아지면 이를 잡아먹는 포식자 계층이 늘어나거나, 이들의 먹잇감들이 줄어듦으로써 견제가 이뤄져야 하는데,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 계층으로 올라서며 이러한 지구의 면역체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인류는 지구를 극심한 오한과 통증으로 몰아가고 있다. 원래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늘 있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인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군인과 매춘부이겠는가. 다만, 20세기 이전에 벌어졌던 전쟁들은 그 파급력이 제한적이었다. 국가들의 정보-통신 기술의 한계로 국가들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서로 계속해서 생존경쟁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역량과 무기를 강화해왔다. 17세기 30년 전쟁으로 전쟁의 규모가 갑자기 커지더니, 18세기 30년 전쟁과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은 그동안 축적된 인류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인류는 보다 많은 개체를 고도화된 무기로 무장시키고 동원할 수 있었다. 즉, 지구의 살을 파먹고 사는 기생충이 이전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닌 채 이리저리 활보하게 된 것이다.

1914년 일어난 1차 세계대전, 1939년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역량을 유감없이 뽐내는 대결의 장이 되었다. 전자는 그나마 전장이 유럽으로 한정되었다면, 후자는 유럽을 넘어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핵폭탄’이라는 무기가 오펜하이머 박사의 주도로 개발되며, 이제 인류는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숙주를 명백한 죽음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무기까지 얻게 되었다.

지구는 2번의 세계대전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피부 이곳저곳이 뜯겨나가고 상처가 났다. 그러나 회복의 여지는 남아있었다. 인간도 신체에 생긴 상처는 곧 아물지 않는가? 그러나 지구엔 회복할 여지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둘로 나뉘어 약 50여 년간 벌인 냉전의 냉기는 지구의 뼈까지 스며들었다. 그 여파로 지구는 몸살에 걸렸다. 표면에 난 상처도 고통스러운데, 이젠 치아와 온 몸을 덜덜 떨게 생긴 것이다.

다행히 1970년대부터 데탕트가 시작되며 추위는 조금이나마 나아졌지만, 고열은 여전히 지구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 여파로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그제서야 인류는 부랴부랴 자기 숙주를 되살릴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 절정을 맞이하였다. 절정인 이유는 곧바로 하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서구권의 승리로 보였던 냉전은 새로운 변이를 초래했다.

2000년대 초, ‘테러’라는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이것은 서구권과 동구권을 가리지 않고 일어났으며, 인간들은 또다시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지구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등등. 누가 이 전쟁이 끝없이 일어나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렇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들이 테러와의 전쟁에 전념하고 있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의 급부상이 이뤄졌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의 유산을 물려받아 여전히 세계 군사력 2위의 대국이었고, 중국은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상태였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신냉전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서방은 이를 애써 무시했지만,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며 결국 현실이 되었다. ‘신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지구는 여전히 고열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고, 이는 지구를 골병으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숙주의 죽음보단 자신들의 현실의 이익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과거 인류는 ‘어떻게 오늘 하루를 살아남을 것인가?’로 고민했다. 하루하루가 삶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이러한 질문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현재, 생존에 관한 질문은 인간에게 되돌아왔다. 과거의 그것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만 국한되었다면, 이제는 전 인류로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점점 올라가는 지구의 체온이 불러온 급격한 기후 변화와 첨예해지는 신냉전의 냉기 속에서 과연 인류는, 지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숭실대학교 1학년 이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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