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6.19 10:02

오늘이 현충일이네. 그래 오늘인 것 같아. 바다와 호수를 가르는 모래 언덕에서 부는 바람은 얌전히 불었고, 호수 연잎은 또르르 전날 내린 빗물들을 쏟아내고 있었어. 어린아이들 주먹만 한 연꽃 꽃봉오리가 호수 주변에 그득 했어. 연꽃이 피었으면 더 멋졌을 텐데 그때 그 생각을 했어. 암튼 조용하고 차분했지. 지금처럼 사람들이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니던 시절은 아니었으니까.

간간이 데이트 나온 연인들이 호수 주변을 걸었고, 왜가리 서너 마리가 갈대숲에 서성이다 날아오르곤 했어. 한낮의 따가움이 싫었던지 재재거리던 개개비란 녀석들이 왜가리의 갑작스러운 비행에 놀라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다시 재재거리기 시작했어. 연못가를 따라 늘어선 벚나무길 산책로는 고즈넉했고 호수 수면 위는 햇빛이 반짝거려 아름다웠던 날이었어.

사진제공=조규옥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너와 난 걷다가 모래 언덕에 올라갔어. 모래 언덕엔 나지막한 해당화가 피어 있었지. 초당 벌에서 불어오던 바람은 모래 언덕에 잠시 멈추었다 바다로 나가고 해당화는 6월의 따가운 햇볕도 아랑곳없이 붉게 피어나고 있었어. 나란히 걷다 말고 사진을 찍겠다고 네가 두리번거리더니 날 작은 바위에 올라서라고 했어. 바위에 올라섰을 때, 초당 벌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내 보랏빛 치맛자락을 스치고 지나가고, 살짝 긴 내 머리가 바람 따라 춤추다 멈추었을 때, 내가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났어.

카메라에서 눈을 떼며 “예쁘네!” 네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내 두 볼이 불 같이 타올라 당황하고 있었지. 겨우 한다는 소리가 “얘는, 뜬금없이.....” 그 말이 떠듬대고 나오자 그게 재밌었는지 넌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어. “뭐? 난 저 해당화가 이쁘다고 했는데.....” 시치미 뚝 뗀 너의 말에 내 눈은 한없이 치켜 올라가며 흘겨봤지. 네가 천천히 다가오며, 환하게 웃으며 네가 말했지. ‘있잖아, 네가 해당화같이 예쁘다고. 네가 너무 고와서 해 본 소리야.” “어휴! 주책이야.” 그러면서 내가 널 콩콩콩 때렸지!

며칠 전 그곳에 갔었어. 개발이란 이름 아래 저 사진 속 풍경은 없었어. 호수와 바다를 가르던 사진 속, 모래 언덕과 붉게 피던 해당화도 없었고, 빛나던 햇살을 담아 불던 바람도 떠나고 없었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경포 바다는 쓸쓸했어. 떠나지 못한 것들이 모여 바닷가 모래밭에서 웅성이고, 갈매기 몇 마리 목이 쉬도록 울었지만 파도 소리에 이내 묻히곤 했어. 해는 노을빛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난 그 자리에서 널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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