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고도의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이에 부합하는 최고의 수단이 바로 표준화를 들 수 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동일 품종의 물건들은 모두 같은 모습, 같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 물품을 생산하는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들 역시 또 다른 공장에서 표준화되어 생산된 것들이다. 그래야 고장이 나더라도 빠르게 교체할 수 있고 하자가 생긴 물품은 즉각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도로 역시 표준화의 산물이다. 각 차선의 간격부터 인도의 넓이 등등까지 세세하게 규정이 되어있고 건설업자들은 이에 맞추어 도로를 깔고 차선을 분류하고 인도를 만든다. 반면 산길은 다르다 누군가 길을 의도적으로 깔지 않는다. 그렇기에 산길은 위치마다 넓이도 경사도 모두 다르다 유일한 공통점은 길바닥이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뿐이다.
산길과 포장도로는 모두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다만 다른 점은 도로는 철저한 계획과 계산 끝에 깔리는 반면 산길은 필요에 따란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 봉일천에 있는 거북산 산책로도 짧게는 수십 년 멀게는 수백 년간 사람들이 산을 타면서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한 결과물일 것이다. 앞서간 사람이 흙바닥을 다져 놓으면 다른 누군가는 다져진 흙이 이어진 흔적을 길이라고 인식하고 그 위를 거닌다. 아마 이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며 거북산 산책로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거북산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사람이 없더라도 사람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도시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서로 도로망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리고 도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도시이고, 둘째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사람이 모여들며 형성된 도시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시는 현재 한국에서 신도시라는 불리는 곳들과 강남이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시는 내가 태어나고 20여 년을 살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봉일천이 아닐까 싶다.
봉일천은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공릉천은 수심이 얕아 왕래하기 어려운 편도 아니고 건너편에 농사에 적합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아마 조상님들은 이곳을 보고 무릎을 탁! 치지 않았을까. 마침 봉일천을 넓게 감싸고 있는 거북산도 북동쪽을 향해 뻗어 있어 겨울엔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를 막아주고 있고 산도 그다지 험하지 않기에 다른 마을과 왕래하기도 편했을 것이다.
경기도 파주에 관련한 사료들을 찾아보면 파주의 교하군과 조리읍이 삼국시대부터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하는 한강의 제1지류인 공릉천과 한강이라는 두 개의 하천이 교차하는 곳이라 하여 신라 말기에 ‘천정구현’에서 ‘교하’로 개칭되었다. 봉일천은 원래 공릉천을 지칭하는 단어였으나, ‘공릉 앞을 흐르는 하천’에서 봉일천이 ‘공릉천’으로 바뀌어 불리면서 현재의 마을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처럼, 봉일천이라는 작은 마을과 그 앞을 흐르는 작은 하천인 공릉천도 많은 역사를 품고 있다. 마치 거북산에 놓인 수많은 길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형성된 것처럼, 그리고 거북산에 놓인 수많은 길을 기록하여 표지판을 세우고 산책로를 표시하는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봉일천은 사람 냄새가 진한 곳이며, 화려하진 않지만, 누구에게도 자랑스러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