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회사 게시판에 인사 발령이 공지되었다. 게시판을 본 P부장은 입에서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소문으로만 돌던 그 팀장이 P부장 부서 팀장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온다는 현실 앞에 자괴감과 서글픔이 밀물처럼 밀려와 P부장의 가슴을 세게 때리고 갔다. 참 회사를 오래 다녔다는 생각이 들면서....
P부장은 작년에 이미 유사한 경험을 했다. 3년 후배가 임원으로 진급하여 P부장 조직의 장으로 왔다. 그땐 P부장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P부장의 조직은 거의 400명 정도 규모여서 후배 임원이 P부장과 크게 접촉할 일이 없었다. 이에 그 후배가 P부장의 일상 업무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번 경우는 달랐다. 팀장은 10여 명으로 구성된 조직의 장이기에 부하 직원들과 거의 매일 업무 협의를 하면서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군대나 회사나 마찬가지로 조직의 장이 구성원보다 업무 경험도 많고 연배가 높은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P부장이 30년 회사 근무하면서 이렇게 조직이 흘러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전부터 이런 일상적인 현상에 파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 팀장이 임명되는 분위기다. 적게는 4~5년 많게는 10년 후배가 팀장으로 발령 나는 경우도 있었다. P부장은 회사 다니는 동안 이런 경우는 남의 얘기지 본인에겐 닥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짜노 그것이 현실이 되어 버린걸....
회사를 인제 그만 다녀야 하나 아니면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참고 더 다녀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팀장의 성향이다. 팀장이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스타일이면 함께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계속 다니기가 쉽지 않다. 회사든 군대든 혹은 다른 조직 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상사와의 관계 형성이다.
P부장의 경우 후자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팀화합을 이끌어가는 스타일이 아니고 전형적인 Yes 맨 성향으로 알려져 있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이런 유형은 P부장이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성향의 팀장과 몇 년을 같이 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섣부른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란 자고로 주위에서 듣는 것과 막상 실제로 겪고 보면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괜한 선입관으로 빠른 결정을 하면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참 회사 오래 다니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우째 이런 일이!! P부장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회사 생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한 고민으로 새벽 4시면 깨곤 한다. 평소의 컨디션이면 6시 전후로 일어나곤 했었는데….
한편으론 이런 갈등과 고민은 백해무익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다면 빨리 그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내 건강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자세다. 아무리 팀장이 어린들 어쨌거나 그 조직의 장이기에 그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아무리 짬밥이 많은 30년 군생활을 한 원로상사라도 이제 갓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아들뻘 되는 장교가 그 부대 지휘관으로 오면 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P부장은 며칠 동안 고민과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답이 없었다. 퇴근길에 로또 판매점에 들러 거금 5만 원을 지불해서 로또를 구입했다. 제발 한번 돼라 이거 한방이면 회사 바로 사표 던질 수 있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새기면서 토요일이 되었다. 로또를 추첨하는 날이다. 두근두근 거의 가망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워낙 간절했기에 기도를 몇 번이나 했다.
그러나 역시나 꽝이었다. 역시 내 팔자는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 하는구나! 하면서 낙첨된 죄 없는(?) 로또 종이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앞으로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겠다. 한순간 가장의 선택으로 가정의 경제적 뿌리가 흔들리게 할 수는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