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를 가건 계단이 있으면 그 숫자를 세는 습관이 있다. 내가 사는 동 로비는 4개, 아파트 단지로 올라오는 계단은 34개,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24개, 우리 동네의 작은 도서관은 24개 등등
이러한 습관이 언제부터, 왜 생긴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도 계단을 마주치면 머릿속에서 저절로 세기를 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기 직전에 개수가 짝수일지 홀수일지, 대략 몇 개일지 생각해 두고, 내 생각과 결과가 일치하면 작게나마 미소를 짓곤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우리 아파트는 현재 단지 내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아파트 단지로 올라오는 계단의 숫자가 33개로 1개가 줄어들었다. 혹자는 이게 무슨 변화냐 할 수도 있다. 계단이 33개이든, 34개이든 집으로 올라오는 데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신경이 쓰인다. 어린 시절부터 이 계단의 개수를 꾸준히 세어왔고, 그래서 34라는 숫자는 내게 친숙함과 안정감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시사하듯,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산이 깎여 아파트 단지가 되고, 1층 상가가 사라지고 4층짜리 건물이 들어섰으며,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골프장은 고급 빌라 단지가 되었다.
환경은 인간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여기서 환경은 인문환경과 자연환경 모두를 지칭한다. 두 종류의 환경이 백지상태로 태어난 인간을 안아주고 보듬어줌으로써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성격, 취미, 관심사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그렇기에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자라며 성인이 된다. 성인은 다른 이들과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인생의 반쪽을 찾아 가정이라는 인문환경을 이룬다. 가정 슬하에서 아이는 다시 부모가 겪은 것들을 반복함으로써, 인간이라는 개체가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러한 추세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아이들은 자연환경을 접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인간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자연을 개발하고 생태계를 아무렇지 않게 파괴한다. 비단 자연환경만이 이런 것은 아니다. 인문환경 역시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라는 신종 종교를 맹신하며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었다.
인문환경의 또 다른 키워드는 AI이다. 인간은 복잡한 계산을 대신해줄 컴퓨터를 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인간과 똑같은 사고를 하는’ AI를 만들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작년에 발표된 Chat GPT(챗 GPT)의 경우엔 인간 세상에 돌풍을 일으켰다. 대학생인 나도 그 여파를 생생히 느끼고 있다. 아, 그렇다고 과제를 챗 GPT에게 맡기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가족 공동체 혹은 지역 공동체의 붕괴, 그리고 AI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려야 한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소셜 미디어나 각종 사이트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이 많이 출현했다. 이들을 ‘틀어박히다’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라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를 일컫는 신조어다.
AI는 안 그래도 점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수레바퀴를 더욱 가속하는데 일조했다. 1년, 짧게는 몇 달마다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AI시대의 특징은 ‘그 누구도 미리 겪어보지 못했다’라는 점이다.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었던 과거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노인을 대단히 예우했다. 조선시대에는 특정 나이가 된 노인들을 궁궐로 초청해 왕과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오로지 빅테크를 최일선에서 주도한 빌 게이츠, 베이조스, 머스크 등과 같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창업을 한 뒤에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으니까.
이젠 10년이 아니라 1년이면 강산이 변화한다. 인간은 자신들을 보듬어준 자연이 아니라 자신들 나름대로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지성인을 추종하고 있다. 농촌이 대규모 신도시나 공장지대로 바뀌고, 산이 무분별하게 벌채되어 골프장이 생겨도, 사람들은 이에 따라 생기는 부정적 영향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앞서 언급한 골프장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정말 많았기에, 그 건물이 헐리고 높은 철제 골격이 부서지는 그 장면에 애환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건물 곳곳에서 8살 즈음의 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내 기억은 건물 잔해에 깔려 사라지고 말았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무감각해져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모든 걸 다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이 34라는 숫자는 잊지 못할 것 같다. 21년 동안 나와 함께 한 숫자니까. 34, 그리고 33.
숭실대학교 이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