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8.14 10:53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 첫 만남 이후 딱 100일째 되는 날 결혼식을 올린 P부장. 너무 섣부른 결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시엔 나이 서른만 넘어도 노총각 소리를 듣던 시대(?)였다. 약간 급한 마음도 있었고 어쨌든 그동안 맞선과 소개팅을 여러 차례 해보았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는데, 첫눈에 왠지 마음이 끌려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제안했다. P부장 아내도 약간 망설임은 있었지만, P부장의 외모(?)에 반해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짧은 만남 뒤의 결혼이라 약간 우려는 있었지만, 몇 달간은 순탄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역시나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P부장은 평소에는 점잖은 편이지만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 빠르게 결정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었다. 그에 반해 아내는 매사 신중히 생각하고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 한참 고민하고 결론을 내리는 성향이었다.

서로가 거의 반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살아가면서 일을 결정함에 있어 하나둘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한 해 두 해 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P부장과 아내의 사이도 점점 멀어졌다. 둘 다 맞벌이를 하면서 P부장은 아침 6시에 집을 나서고 저녁 8시 혹은 9시에 퇴근하고 아내는 아침에 8시경 출근하고 오후 5시에 집에 오다 보니 시간대가 맞지 않아 얼굴 마주칠 기회도 거의 없었다.

아침엔 서로 일어나는 시간과 출근 시간이 달라 당연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퇴근 후에는 P부장은 P부장 방에서 아내는 아내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니 그렇지 않아도 갈등의 골이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방에서 나와서 같이 얼굴을 보게 되어도 서먹함이 있었다.

더구나 애들마저 대학에 들어가고 집을 떠나니 P부장과 아내의 대화를 연결해 줄 연결고리가 거의 없어지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점점 멀어져 갔다. 두 사람 사이에서 위기 상황을 먼저 감지한 사람은 P부장이었다. 가끔 TV나 신문에서 황혼이혼이라는 얘길 듣곤 했다. 황혼 이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남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살다 간 황혼이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마저 몰려왔다. 퇴직 후 그래도 나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는 현실을 피부로 확 느낀 P부장이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단시간에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부부관계 회복도 마찬가지임을 반백 년 살아온 P부장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과연 그러면 어떻게 하면 멀어진 부부 사이의 마음을 합칠 수 있을까?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나 운동이 있으면 부부관계 회복에 특효약이라고 생각되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으나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P부장은 활동적인 운동과 취미를 좋아하고 아내는 정적인 취미를 좋아하고 운동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쉽게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정적인 취미를 좋아하던 아내가 TV를 보면서 골프 채널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필드는 못 나가더라도 스크린 골프 치러 가자고 별생각 없이 한 번 제안했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아내가 스크린 골프는 같이 가자는 제안에 선뜻 동의했다.

다음날 집 근처에 있는 스크린 골프장엘 갔다. 평소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P부장 아내는 골프는 의외로 좋아했다. 비록 실내에서 하는 골프지만 스크린 앞에 펼쳐진 멋진 골프장 경치를 볼 수 있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하는 운동이고 조금씩 하면서 실력이 향상되고 행운이 따라 예상치 않게 좋은 점수가 나오면서 아내의 흥미를 북돋아 주었다. 그러면서 서로 골프에 대한 얘길 나누면서 어느덧 많은 대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회사 생활 30년은 이제 거의 마감할 때가 되었다. 그럼 퇴직 후 30년을 누구와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이런 아내와 30년을 함께 더 살아가기 위해선 공통된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P부장 부부에겐 바로 골프였다. 물론 평일에도 부부끼리 필드에 한 번 나가려면 최소 40만 원이 든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스크린 골프장이라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이 있다. 노후의 가계 경제에도 크게 영향을 주지 않기에 그야말로 중년의 부부에겐 딱 맞는 운동이라고 P부장은 강조한다. 아직은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앞으로 30년을 함께 하다 보면 실력도 조금 늘 것이고 멀어졌던 부부 사이도 좀 더 가까워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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