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8.23 15:38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 간 이해타산을 따질 때,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과 그 결정을 하려 한다. 생존의 법칙에 맞기에, 그래서 인지상정이라는 말이기에,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의사 결정권이란, 사회 서열로 인해 먼저 정해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물리적인 나이란, 그래서 만들어진 서열이란, 물론 자기희생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이는 이 사회를 지키고 있는 기본 틀이라 하겠다.

나이란 일반적으로 언제 태어났느냐 하는 물리적인 나이를 말한다. 그러나, 나이란 태어난 순서로만 매겨지는 것만은 아니다. 혹자는 부모가 누구였느냐에 따라 나이는 서로 다르게 먹는다고도 한다. 또한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았느냐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물리적인 나이를 의미 없게 한다. 1년의 좋은 경험은 20년을 그저 보낸 세월보다 훨씬 많은 나이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양한 나이 종류를 접해 들어왔다. 물리적 나이, 지식의 나이, 사회적 나이, 지혜의 나이, 전공의 나이, 욕심의 나이, 경륜의 나이, 사랑의 나이, 내공의 나이 등등. 그렇게 따지다 보면, 자기마다 지닌 고유한 나이, 나름대로 스스로 결정해 성장시켜 온 자신의 나이가 제일 중요하고, 누구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야 살 가치를 스스로 느낄 테니 말이다.

이제 나이가 조금 드니, 점차 나이가 들수록, 먹는 것, 가지는 것, 자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등등에서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란 결국 나의 관습을 조금씩, 과거란 뒤로 또 오늘이란 옆으로, 내려놓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관습이 나를 억누르고 나의 마음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었는지, 얼굴 꼿꼿이 드는 불편함의 꼬리를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 등 자연 속을 들어가 보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이전에 몰랐던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은 본능이 아닐까? 과거를 감춘 채, 새로운 미래에 살고 싶은 건 나만의 부끄러운 상상일까?

얼마나 더 공부하고 마음을 비우고 또 몸을 비워야 주위 분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이 또한 욕심의 나이로 불리는 건 아닐까? 서로 존중하고, 서로 내 것을 내어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고 싶은 것도 욕심이란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그런 마음이 들었고, 평소 그렇게 잘 어울리더라도,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입장이 서로 달라지니, 갖가지 경우의 이런저런 다툼이란 계속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다툼의 마무리는 서로 '내가 먼저 고개 숙이는 일'이다. 결국 '다툼과 이로 인한 부끄러움이란 결국 내 욕심에서 시작하고, 내 욕심으로 끝나는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음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본다. 아, 나는 얼마나 '내 욕심을 내 마음과 몸에서 먼저 내려놓는 일'을 되풀이해야 잠깐이나마 평온해질 것인가!

우리네 세상살이는 서로 비슷해지려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사는 수밖에 없다. 비슷하고 더 비슷해져, 그들을 나무라든지 나 자신을 나무라든지 하는 일에 상관이 없어지는 날까지 그러하다. 아마 지구가 존재하는 한 그러할 것이리라. 그러나, 그래도 서로 멋지게 바라보는 마음과 그 노력이 있는 한, 아무튼, 이 세상은 그 사랑이 오고 가기에 살만하다. 어떠한 다툼과 껴안음의 굴곡이 울퉁불퉁 오르내린다 해도, 아름다운 받아들임과 그로 인한 벅찬 감동은 어디에든 또 언제까지 사람 사람마다 존재할 것이다.

물론, 우리 서로 한 발짝 물러난 만큼의 용서와 사랑으로 다가가기 전, 다짐해 둘 일이 있다. 부디, 누가 보더라도, 나 자신 먼저 '내 마음 욕심과 몸 욕망'이 하나로 비슷해지는 것에 더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마음 벽이든 세상 벽 어디든, 누구에게든 지금 생각을 솔직히 밝히는 지금의 내 부끄럼 드러내기에 언제라도 떳떳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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