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제법 선선합니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서일까요? 하지만 나이가 환갑이 지나고 고희가 지나도록 모기 입이 삐뚤어졌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한 번도 입이 삐뚤어진 모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름의 불볕더위도 아침저녁으로 누그러지고 따가운 햇볕도 힘을 잃은 게 피부에 와닿습니다. 풀도 나뭇잎도 더 이상 새순이 올라오지 않는 게 눈에 보입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아파트만 나서면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없던 손수건까지 준비해 다녔던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하도 더위가 기승을 떨어 가을이란 게 과연 오긴 올까? 그런 의구심까지 들었더랍니다. 그랬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긴 오나 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선들거려 벌써 가을? 그런 설레발 떠는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왔습니다.
베짱이와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은 지도 여러 날 지났습니다. 떠남이 아쉬운 매미의 울음소리에도 한여름에 보여주던 결기는 다 사라지고 들릴 듯 말 듯 간간이 들려올 뿐입니다. 녀석들도 떠나야 함을 이젠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아무리 우겨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어도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는 세상의 순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겠지요.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더군요. 동전의 양면이지요.
시시때때로 아파지는 무릎은 어떤 이면을 숨기고 있을까요? 그저 나이가 들어서? 아니면 너무 많이 사용해서? 또 아님, 체중이 너무 나가서 무릎이 버텨 낼 재간이 없어진 것일까요? 어찌 되었든 그중 하나겠지요. 기를 쓰고 걷는 것도 조금이라도 무릎 건강에 도움을 줄까 하여 아침저녁으로 걷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는 고생한 무릎을 위해 어설픈 마사지를 해 주는 것이 다입니다. 과연 걷는 일이 아픈 무릎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열심히 걷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지요.
“우린 장애인일까? 아닐까?”
“ 분명 장애인인데 우리도 장애등급을 신청해 보면 등급이 나올까?”
어느 날, 친구들 모임에서 벌어진 열띤 토론의 주제였습니다.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심호흡을 몇 번 길게 하고서야 겨우 걸음을 떼는 일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길을 걷다가 비탈길이나 오르막길을 만나면 숨이 멎는다고 합니다. 너도나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하다가 장애인의 고단하고 불편한 일상을 이해하게 됐다는 어느 친구의 얘기를 끝으로 얘기는 다시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친구들 만나 떠는 수다라는 게 늘 그렇습니다.
“아우, 무릎이야!”
“대체 왜 이렇게 아픈 게야”
요즘 제일 많이 떠오르는 말입니다. 시큰시큰 욱신욱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부어오른 무릎을 가라앉히고자 별별 것들을 다 사들입니다. 무릎 찜질기도 사고, 무릎 마사지기도 사고, 무릎에 좋다는 각종 보조 식품들도 마구 사들여 약서랍을 따로 정해 버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무릎에 좋다는 각종 체조까지 다 해도 시큰시큰, 욱신욱신은 내 몸에 찰싹 붙어 떠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떠나지 않겠다면 같이 살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니 내가 바뀔 밖에요. 내 걸음이 느려져도 무릎 탓을 하지 않아야겠지요. 의사가 평지를 걸으라니, 지하철을 탈 때는 멀더라도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걸어야겠지요. 긴 세월, 내 마음대로 바쁘면 뛰고 튀어 오르며 따라오라 했는데, 이제는 무릎이 원하는 걸음으로 걸으며 느려터짐에 구시렁거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다른 친구들보다는 심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베짱이와 귀뚜라미가 입 다무는 계절이 오면, 들국화 가득 핀 강변 옆, 가을 곁에 앉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이 바라보이는 작은 카페에 앉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 써 내려 간 이 얘기들도 추억이 되어 다가오겠지요. 욕심을 부린다면 그대도 그곳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한바탕 수다로 풀어내고 조용히 겨울로 들어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