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 에세이] 나와 컴퓨터, 그 힘 대립에 관한 ‘멍때림’

    입력 : 2023.09.22 10:18

    컴퓨터도 자연의 하나일까?
    이 도시도 자연의 하나라니 맞는 듯.
    그 중심에 내가 있는데,
    또 내 중심에 끊임없는 욕심이 있는데,
    하, 이 모두 자연의 하나일까?

    컴퓨터 힘은 내 욕심에 비례

    실 가닥 같은 몇 개 바람이 살랑 춤추는 저녁, 내 시간 따라 도는 동네 세 바퀴. 이젠 스마트폰도 내 신체 일부가 된 듯하다. 뒷주머니에 넣었다, 앞주머니, 다시 손에 쥐는데, 그런데 어디 있어도 거추장스럽다. 내겐 쓸데없는 앱이니 뭐니 잔뜩 담겨 있으니, 그 모두 할 수 없이 들고 다녀야 하니 그럴 수밖에. 이럴 때면, 유별나게 이걸 살 속에 넣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빨 속에 이식해? 아니 귀 깊숙이 넣어? 아니, 누구도 모르게 내 몸에 아니 배 속에 넣어? 22세기엔, 손에 든 이것, 눈 귀 입 머리 몸 어디로 숨어버리는 생체폰으로 바뀌리라. 배터리 충전은? 허, 별걱정! 생체에너지, 그래 생명이 그 힘이겠지.

    하,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설상가상, 컴퓨터는 우리 생명을 담보로 인류의 힘과 대등해지는 현상에 가까워질 것 같은데, 그네 컴퓨터끼리 서로 작당해 나를 이래라저래라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살게 되는 날, 그런 문명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 같은 사람은 뭐 하고 지내지? 그 지루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낼까?

    아마 이럴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나를 닮아 비슷하게 된다손, 아무리 지금 내가 호랑이나 자동차 모양으로 바뀐다손, 그래, 그 미래의 그 어떤 나는 오늘처럼 길에 문득 서서 물끄러미 하늘을 보곤 할 거다. 뭐 그땐, 멀리 보이는 산이나 그 앞 들판이나 나무며 풀 또 꽃 또는 지나가는 구름 모두 내 친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그래, 지금 나처럼 꼭 한번은 할 거다. 한갓 희망 사항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우기고 싶은, 가슴 한 귀퉁이 외침을 내 어쩌랴!

    상상일망정, 기왕이면 나는 이 아름다운 지구와 함께 있으니, 그 모두에게 감사해야 할 것. 스마트폰을 톡 떨어뜨려 놓고, 흥 너 없어도 난 산책을 할 수 있어, 멋지게 웃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도시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다가, 나 지금 스마트폰 없어! 하며, 어깨 으쓱거릴 수 있을까. 또 건물이며 자동차며 신호등 이들에게도 욕심덩이 스마트폰을 내려놨어! 하며, 나를 자랑할 수 있을까. 그래, 지금은 이 자랑만이 내 지금을 지켜내는 유일한 힘이다.

    내 힘의 근원에 관한 불구경

    힘, 나를 유지하기 위한 힘. 언제부턴가 그 내 힘은 내 욕심의 다른 이름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맞다.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껴야 하기에 참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당연한 것을, 다시 당연하다고, 확인에 확인하며 지금 숨 맛을 또 느끼고 싶은가 보다.

    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내 욕심 확인만이 현재 펼쳐지고 있는 ‘거대자본가들의 충돌’과 ‘특별한 사람 그리고 그 집단, 그래서 집단 간의 다툼’을 불구경하듯 지나칠 수 있다. 아니면, 지구 모두 오염되어, 오늘 아침처럼 싱싱한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때, 그래서 돈이고 뭐고 아무런 쓸모가 없을 때, 밥 한 숟가락 더 먹고 싶어 발가벗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그때의 나는, 밥풀 몇 개라도 감추고 또 불구경하듯 지나치고 싶다. 참, 이내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아무리 살아있기 위한 다툼이라도, 이쪽저쪽 서로 극한 상황에 치달아 한순간이라도 계속 눈에 힘을 빼고 살지만은 못한다. 다만, 내 것에 또 다른 내 것을 만들어 간다. 그저, 세간에 도는 이야기를 왼쪽에 현미경 오른쪽에 망원경 들고 그 어느 것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뭐 그렇게 웃다가 울다가 지내곤 한다. 돌아보면, 그 순간 손에 꽉 움켜쥐거나 놓치거나 하다가, 지금의 내 것을 새삼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 힘이구나, 또 나구나 하며.

    이렇듯 나는, 어느 순간, 이미 짜인 틀에 익숙하기에, 먹고 자고 쉬고 일하고 뭐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새 틀이 조금씩 바뀌어 갈 뿐이다. 그 틀에 컴퓨터와 그다음 것이 점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설상가상 시간이 갈수록,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도구로서, 컴퓨터를 몸에 달고, 또 몸을 그 속에 집어넣고 있을 뿐. 어떻게 잘, 또 내가 먼저, 한 몸이 될까 하며 침을 삼킬 뿐.

    불구경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연히 불구경하다가, 어떤 이는 불을 끄는데, 또 어떤 이는 다음 불을 어디에 낼까 하며 불구경한다. 그러면서, 그중의 하나인 나는 다음 식사 때는 뭘 먹을까 두리번거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이러한 생활의 반복으로 지치고 지칠 때, 나 자신을 스스로 구제하듯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산책하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어떤 힘이든 반드시 사라지고, 다른 힘이 생겨난다는 말을, 나처럼 누구든, 그 누구와 나누고 싶어 말이다.

    욕심과 멍때리기 사이에 서서

    곰이 동굴에서 몇 달 동안 있다 보니 여자가 되었다는 말, 그래서 단군을 낳았다는 말, 뭐 믿거나 말거나 하면서도 믿고 싶어진다. 왜?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면서,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참다가 보니, 곰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 인공지능이 나와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러니 좀 건너뛰기를 하면 인공지능이 곰과 관계를 맺을 거라는 것, 결국 더 먼 건너뛰기 다음 나와 곰이 어떤 관계가 맺어지리라는 것. 이런저런 내 상상은, 어쩌면 내 꿈은, 나를 벗어나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한번은 관계를 맺고 싶은 모양이다.

    그랬다. 이러한 나의 모양새를 만지노라면, 문득 회색지대에 서성거리고 있는 내 발등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영원한 유토피아나 저 먼 메타버스 세상’으로 가고 싶은 몇몇 과학자나 기술자 혹은 그들과 함께 똘똘 뭉치고 싶은 권력자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들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나도, 그들처럼, 가슴 한구석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불로초 보물 지도를 품고 싶은지 모른다.

    물론, 인류 조상이 두 발로 걸을 때든, 먼 미래 ‘우주자장자동조절장치’를 이마에 달고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닐 때든, 그 어느 때의 나는, 무척이나 알량한 나만의 행복을 누리고 싶은가 보다. 이러한 현상은 바이오리듬이니 자연 회귀니, 기도니, 카타르시스니 하는 것과 매우 혼란스레 얽히고설켜 생존의 또 다른 출구가 되는 듯하다. 이러한 권리는 다음 한 끼 먹을 돈이 없어 길거리에서 손을 벌리는 이에게도 있다. 물론, 이들 돈이 이래저래 내 것이 되기에 가장 좋은 것만 골라 먹는 이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들 사이에 서서 그들 모두 공평한 기회가 있는 것이라 외치는 이에게 뉘라서 돌을 던지랴. 그저 멍해질 수밖에.

    과연, 나는 그 ‘멍해질 때’, 가끔 ‘멍때리는’ 하얀 상황, 어떤 결과도 없는 한계상황으로 몇 번 들어가 봤을까? 그때마다, 편리한 상황에 맞게 수없이 외면하기도 하고, 혹여 한 번은 그 비슷하게나마 내 끝까지 가봤다고 억지 부린 적 있으리라. 그래, 아직 한 번도 내 마음에 들게 가보지 못했기에, 혹여 한 번 기회는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희망으로 ‘멍때리는’ 연습하는지 모른다. 지금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컴퓨터 전원이 갑자기 꺼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서둘러 이메일 속에 저장하느라 바쁘니, 연습할 기회도 없는 듯싶다.

    오죽하면, 현대 문명에 찌든 삶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도 좋다며, 몇 년째 ‘멍때리기 대회’가 열리겠는가. 참가자들은 일정 시간 동안 웃거나 말하거나 졸아도 안 된다. 물론, 스마트폰에 잠깐이라도 신경 쓰면 탈락. 심장박동이 일정할수록 평정을 유지하는 것인바, 이것이 멍때리는 행위. 이는 어쩌면, 인간 스스로 삶의 지침을 회복하려는 자정 능력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여겨진다.

    과거도 그랬겠거니와, 새 문명이 생길수록, 그때마다 가만히 ‘멍때리는’ 행위는 점점 가치 있는 정보로 반복해 쌓여 왔다. 이렇듯, 그 반복은 언제나 지금을 이겨내는 힘이니, ‘멍때림’ 그래 뭐든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내 큰 가치 맞다. 행여 어떤 행복이든 그다음에 생길 수도 있는 멍해짐, 내 지금을 느끼는 그 ‘멍때림’이 모든 욕심도 잠재우는 힘이라니, 뭔가 억울한 것 같은데, 허, 지금 나에겐 꼭 필요한 것, 맞다.

    컴퓨터와 살아가는 나 느끼기

    컴퓨터 생활, 그래, 나는 움직일 때마다 사용한다. 지친다든지 싫증이 난다든지, 이제 그런 것 따질 이유가 없다. 그냥 잠자거나 밥 먹듯 하면 된다. 사는 거, 뭐 특별한 거 있어? 내 데이터 하나 오래된 데이터 옆에 기록하고, 그게 그거네 하며 아침 맞이하면 좋은 거지, 이게 행복인 거지. 돈, 지식, 명예, 정의 등 뭐 이런 거, 많거나 없거나 도토리 키재기다. 세상 좀 살아 본 사람의 공통된 이야기다.

    또 싫증이 나지만, 이 글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나도 이렇게나마 행복하니, 그래, 참 영광이다. 멋진 이 영광스러움에 나는 그 무엇에게 감사해야 할까? 내가 생명체라는 사실? 분명 맞다. 그러니, 그 어떤 힘을 만들고 있는 내게도? 이러한 것들이 모여 적절히 어울리는 지구에도? 또 그 위 우주에 감사, 감사? 이러한 것도 맞다. 그 사이를 이어준 시간에? 그러니 당연히 지금에 감사, 또 내 생각에 감사? 뭐, 어떤 것도 맞다. 뭐 이러한 말이 언젠가 블록체인의 트랜잭션이라 하는 한 묶음이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해야 할 것. 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상상에 감사! 그래 뭐든 감사해야 할 거다.

    내가 이렇게 있기까지, 그 많은 나 같은 사람이 무척 많은 생각과 행동을 위해 힘을 만들고 사용해왔을 것. 그리고, 이제 그러한 힘을 컴퓨터에 맡기려 하고 있다. 좀 더 편하고 좋은 것은 사람이, 아닌 것은 컴퓨터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두, 인공지능 아니 ‘인공인간’에 맡기려 서로 애쓰고 있다. 이 희망이, 아니 이 욕심이, 수많은 이론을 만들어 우리 생활을 바꾸고 있다. 경쟁하는 것, 이기는 것은 자랑이라며, 이 순간도 또 다음 순간도 아프지 않고, 더 맛있게 먹고 있는 언제나 그 나만이 더 중요하다며 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매 순간 즐거워지고 싶은 나, 분명 그 어떤 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나만의 것이 유일하다는 느낌으로 키보드와 이 마우스와 그 커서 또 마이크 센서에 매달려 나도 즐겁다며 내 것을 남기는 것이었다. 분명 내 즐거워지고 싶은 욕심 때문이리라. 그래, 내 욕심, 이것으로 내 생명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지금, 나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내 욕심을, 한 번 더 느낀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것은, 숨 쉬고 먹고 마신 것은, 내 힘을 유지하려 한 것의 모두다. 몸에 들어온 힘으로 스마트폰 들고 다니며, 그래서 컴퓨터 문명이 어쩌니저쩌니 나열하고 있다. 이렇듯 문장을 만드는 지금, 내 손끝마다 덜그럭거리며 굴러다니는 내 어떤 욕망의 바퀴를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블록체인이니 인공지능이니 메타버스 다음 또 그 뭐니 하는 단어마다 나를 매달아 놓고, 낑낑거리며 툭툭 건드릴 수밖에. 혹시 이 모두, 그 누가 만들어 놓은 컴퓨터 칩 속에 나와 함께 집어넣고, 나는 나를 가지고 노는 것 아닐까?

    컴퓨터도 자연의 하나다.

    아마도 나이 30 전후였을 거다. KIST에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인으로서 사회생활을 막 했을 때였다. 그때, 사람들과 부딪히는 불협화음으로 마음고생을 꽤 했었다. 이제 좀 나아지려나 하지만, 아직도, 누구 힘이, 어떤 컴퓨터 힘이 아니 내 힘이, 더 크니 적으니 따지는 요즈음이다. 다음은 이러한 나를 달래기 위해 쓴 시다,

     먹고
     자고
     때마다 먹고
     자고

     주고
     받고
     모르면 주고
     받고

     좋고
     싫고
     어쩌다 좋고
     싫고

     걷고
     서고
     툭하면 걷고
     서고
                               (졸시 ‘요즈음 2’ 전문)

    지금은 읽을 때마다, 먹는 음식이나 나나, 꿈에서도 만지작거리는 스마트폰, 그 어떤 것이든 자연물의 하나가 되어간다는 착각이 든다. 어쩌면, 이 착각은 벌써 내 습관이 되었을 것. 이렇게 컴퓨터도 내겐 자연의 하나가 되어가려는 작금이다.

    그래, 맞다. 컴퓨터를 손에 놓지 않는 이유를, 욕심이니 욕망이니 하며, 나 자신에게 변명할 필요 없다. 뭐 사이버나 메타버스 모두 자연의 하나니까, 컴퓨터와 인간이 사이좋게 자연의 법칙에 적응하는 과정이어야 하니까. 먼 그날, 그 요즈음에도, 그래, 그때마다 누군가는 ‘길을 가다 서다, 그러다 멍때리며’ 하늘을 볼 거니까.

    내 남은 날, 나는 얼마나 더 걷고 서고를 되풀이해야 내 웃음소리를 좀 맑게 들을까. 매번 마지막 욕심이길 바라며, 비가 오는 날, 날 잡아 컴퓨터 어디 팽개치고, 혼자 걸어 다닐 거다. 그때도, 내 얼굴도 만지고… 아, 고맙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