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 하나가
"툭" 하고 발밑에 떨어졌습니다.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더니 이제야 때가 된 모양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날 내준다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 詩作 노트
알밤 삼 형제가 발밑에서 반짝입니다.
가을 햇살을 받아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해맑게 웃습니다.
뾰족한 가시를 앞세우고 중무장한 채
무더운 여름을 지나오며 모진, 비, 바람 속에서도
열매를 꼭꼭 품어 안고 키워 낸 밤나무가 새삼 대견합니다.
급한 마음에 산책길에
서너 번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던 밤나무 열매가
10월 들어 찬 바람이 불자 순순히 열매를 내어 줍니다.
무르익었다는 얘기지요.
무르익어 가는 동안 참고 이겨 내야 했던
인고(忍苦 )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고
누군가를 위해 순순히 열매를 내어 준다는 것, 또 한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인생의 가을이 왔건만 나는 아직 욕심을 부리며, 가시를 세우고 세상을 대할
때가 많은데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2.왜?
하필이면
여기에다 자리 잡았누?
외로움도 혼자 견뎌야 하고
폭풍우 속에서도 혼자 건너야 하고
닮다, 닮다, 어찌 나를 닮았누?
*詩作 노트
혼자 살겠단 딸이 아무 연고도 없는 땅에 덜컥 집을 사고 이사하던 날,
하필이면 폭풍우 몰려오던 날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딸의 이사를 끝내고 폭풍우 몰려오는 고속도로에서
왜? 왜?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유행이랍니다.
이혼하기도 너무 쉽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도 모르듯 지나온 세월을 더듬어 보면
혼자 사는 것보다는 둘이 사는 게 훨씬 더 좋다는 걸 모르는
MZ 세대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자에서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기쁜 날도 많지만
뜻하지 않게 날아드는 힘든 일도 겪게 마련입니다.
그때, 그 곁에 누군가가 나를 지탱하며 버티게 만드는 건
또 한 사람이 있을 때입니다.
젊어서야 누구든 부모가 있게 마련이지만 세월이 가면
그 부모는 저세상으로 떠나고 혼자 이 세상에 남겨집니다.
형제, 자매가 있다고 해도 그들은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을 테지요.
결국, 부모와 함께 살날보다 혼자 살아야 할 날들이 더 많다는 뜻이지요.
결혼제도가 왜 이어져 오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디카시(dicapoem)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영상(사진)과 문자를 함께 표현한 시를 말한다. 기존의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창작물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