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훈 에세이] 입사 동기가 마침내 사장이 되다.

    입력 : 2023.12.06 16:02 | 수정 : 2023.12.06 16:05

    1994년 6월 7일. 이날 P부장은 대학 졸업 후 국내 대기업에 입사했다. 벌써 햇수로 30년 전 일이다. 당시에는 같은 해 입사한 직원은 입사 동기라고 불렀다. 같은 해 입사한 동기는 몇십 명 있었지만 같은 날 입사한 P부장의 회사 동기는 단 한 명이었다.

    지난달 하순에는 대기업의 정기인사 발표로 많은 신문사가 지면을 할애했다. P부장에겐 신문에 난 대기업 정기인사는 남의 일이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비록 P부장 회사 정기인사 기사라도 P부장에겐 이미 남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 일간지 신문을 보면서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국내 전자 회사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에 난 인물은 바로 30년 전 같은 날 입사한 입사 동기였다.

    P부장은 그 기사를 보고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왠지 모를 씁쓸함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였다. 같은 해, 같은 날 입사한 단 한 명의 동기가 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아직도 부장으로 머무는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사람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 회사원들이 회사에서 가장 편하게 느끼는 사람은 아마 입사 동기일 것이다. 대기업이라는 조직은 성과를 내야 하는 필연의 목적이 있기에 인간적인 면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선임사원이 후배 사원을 봤을 때 비록 인간 됨됨이는 나무랄 데 없는 후배지만 업무적으로 약간의 실수가 있거나 하면 그냥 보아 넘길 수는 없는 분위기다. 그래서 왜 이런 잘못을 했는지 앞으로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충고한다.

    처음 해보는 업무이기에 때론 실수할 수도 있는데 그 실수에 대해 점잖게 조언을 해주는 선배도 있지만 모질게 꾸짖는 선배도 있다. 그런 선배의 가시 같은 말 한마디는 내가 이러려고 이 회사를 입사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그 자괴감을 회사 동료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는 없다. 그런 얘길 해봤자 “처음엔 다 그래”라는 답변만 해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때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입사 동기다.

    그러나 이번에 승진한 입사 동기와는 이런 인간적인 정을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다. P부장의 성격이 별나서? 아니면 이번에 승진한 입사 동기의 성격이 별나서? 아니 둘 다 정답이 아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렇게 비유하고 싶다. 육군사관학교 같은 해 졸업한 동기생 두 명이 있었는데 서로 다른 부대로 발령이 나서 군 생활을 각자 열심히 했다. 30년의 세월이 흘러서 어느 날 한 친구는 진급이 늦어 여전히 육군 소령인 데 반해 한 친구는 능력을 인정받아 벌써 별을 달았다. 

    군대에서 육군 소령과 육군 소장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두 동기가 부대에서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P부장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만남이란 어느 정도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야 동병상련의 아픔도 나눌 수 있고 공감대도 쉽게 형성이 되어 대화도 자연스러운 화제로 이어지면서 서로의 관계도 좀 더 끈끈한 정을 맺을 수 있다.

    P부장은 입사 때부터 고속 승진한 입사 동기와는 대화를 나눌 시간도 거의 없었고 계급 차이(?)가 크게 나다 보니 공감대 형성도 쉽지 않았다. 반면 여전히 부장으로 머무는 다른 입사 동기들과는 자주 만남의 기회도 가지곤 했다.

    P부장도 한때 임원의 꿈을 꿨지만, 세상일이 참 뜻대로 되지 않음에 많은 실망과 자괴감도 들었고 이젠 완전히 그 꿈을 접은 상태다. 잘 나가는 동기를 바라보면서 한때 난 왜 이렇게 안 풀리냐는 자책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자책이 전혀 도움이 안 됨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이젠 긍정의 마인드로 회사 생활에 임하고 있다. 사장인 동기보다 P부장이 회사는 더 오래 다닐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