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이 바빴다. 몸이 피곤하면 만사가 귀찮다. 남들은 제주도 여행을 1년에 한두 번도 가는데 우린 10년이 되도록 제주도 한번 못 가봤다고 P부장은 아내로부터 가끔 핀잔을 듣는다. 사계절 모두 계절마다 특징을 갖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제주도.
몸은 피곤하지만 더 이상 아내의 요청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노후에 나를 챙겨줄 사람은 아내밖에 없기에 밉보이면 큰일이다. 10년 만의 제주도 여행을 결심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1월 25일 저녁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5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지금까지 제주도 여행은 고작 세 번이었다. 이번이 네 번째 제주도 여행이었고 밤 비행기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이륙 후 내려다본 서울 야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30년 직장 생활 동안 수십 번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업무 출장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제대로 야경을 즐기지 못했다. 여행 가면서 내려다본 서울 야경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김포공항에서 18시 50분 출발하여 제주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20시 정각. 제주 공항에서 숙소까지 18.6km. 택시로 40분 걸려 도착했다. 숙소로 가는 도로에는 눈이 없었지만 도로 옆에는 거의 20cm 가까이 눈이 쌓여 있었다. 3박 4일 일정이라 고된 행군(?)이 예상되기에 첫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월 26일 금요일 첫 목적지로 한라수목원을 방문했다. 오전이라 다소 쌀쌀했지만, 공기만큼은 육지 공기와 차원이 달랐다. 공기는 Take Out이 되지 않기에 최대한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심장에 최대한 많이 담아가려고 노력했다.
이어서 본태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시관이 네 군 데 있었다. 1, 2, 4전시장을 방문했지만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3전시장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무한거울방"이란 곳을 들어갔는데 마치 나 자신이 우주 속에 던져진 느낌을 받았다. 57년 만에 처음 접해본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날의 마지막 목적지는 "새별오름"이었다. 그곳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기에 올라가도 될는지 걱정도 되고 해서 마침 그곳에 있는 조그마한 음료수 가게에 물어보니 왕복 40분 정도 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한 후 마침 목이 말라서 물이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하면서 플라스틱에 들어 있는 물을 조그마한 종이컵에 따라주면서 뚜껑까지 덮고 빨대까지 꽂아 주는 것이었다. 와! 이것이 정말 진정성 있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본 손님에게 이렇게 친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고 미안해서 생과일 음료 2개를 돈을 지불하고 샀다. 사고 싶지 않았는데 사게 만드는 주인장의 서비스였다. 회사 일이든 사업이든 장사든 이렇게 고객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닐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15분 만에 새별오름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제주의 풍경은 정말 육지에선 볼 수 없는 인생 풍경이었다. 멋진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인생샷을 여러 장 찍었다. 제주방문 첫날 이렇게 세 곳을 방문하였다. 저녁 식사는 새별오름에서 친절의 진수를 보여준 가게의 사장님이 소개해 준 "늘봄흑돼지"에서 맛나게 먹었다. 가성비와 맛을 모두 갖춘 식당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밤 9시. 아내 친구 부부와 30분 정도 담소를 나눈 후 바로 헤어졌다. 내일 또한 바쁜 일정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1월 27일 토요일.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했다. 한 끼 2만 3천 원이었다. 아내 친구가 값을 냈다. 자기 때문에 일정이 좀 바뀐 것에 대해 미안함으로 밥을 산다고 했다. 그 정도의 일정 차질로 비싼 밥을 살 필요는 없었는데 아내 친구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첫 방문지는 동백수목원이었다. 참 무지하게 살았다. 아내의 얘길 듣고 동백꽃이 겨울에 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꽃은 봄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동백수목원에 도착해서 그곳을 보면서 또 한 번 탄성이 나왔다. 추운 겨울에 꽃이 피는 것도 신기했지만 수목원의 정경이 그동안 P부장이 알았던 수목원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수목원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수목원을 뒤로하고 쇠소깍과 섭지코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이미 한번 방문한 곳이라 별로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빛의 벙커"라는 곳이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내의 재촉에 여지없이 방문한 장소였다. 유명한 서양 미술가들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감상하도록 만든 장소였다.
어두컴컴한 장소라 처음엔 별로 느낌도 좋지 않았지만 10분 뒤 천장, 바닥, 벽면에서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미술을 거의 모르는 P부장도 감탄하게 했다. 살짝 피곤하더라도 아내의 말을 들으면 좋은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아내 친구 부부와 함께했다. 아내친구 부부는 아들과 조카도 함께 왔기에 여섯 명이 식사했다. 아침 식사도 신세 지고 해서 저녁 식사는 P부장이 내기로 했으나 어느새 발 빠른 아내 친구의 남편이 이미 계산했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자꾸 쌓였다. 그래서 P부장은 어떻게 조금이라도 신세를 갚을까 생각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아내 친구의 아들과 조카에게 각각 용돈을 주었다. 그래야 P부장의 마음도 편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내 부부와 함께 숙소 안에 있는 마사지샵을 방문해서 한 시간 받았다. P부장은 동남아 출장 시에 많이 받았기에 별로 느낌은 없었지만, 아내와 아내 친구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주 받기엔 비용이 고가로 월간 혹은 분기에 한 번 받는 거로….
1월 28일 일요일. 오전 9시 25분 제주공항 출발이라 숙소에서 서둘렀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사과 한 조각으로 식사를 때우고 체크아웃 후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에 도착하니 8시 20분. 평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출발 30분 전에 도착했으면 비행기를 못 탈 뻔한 상황이었다.
김포에 도착하니 10시 35분. 공항 도착 후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12시 10분 공항 출발 버스를 타고 망포역에 도착하니 13시 30분. 10년 만의 제주 여행. 나름 괜찮은 추억을 만든 3박 4일 여행이라 자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