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感恩寺址東西三層石塔) (국보)
신라 최초의 석탑은 목탑과 전탑 양식을 절충한 형식의 분황사 모전석탑으로 삼국시대 신라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그 이후 삼국시대 신라 석탑은 별로 전하는 것이 없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다양한 석탑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삼국 통일이 정치적, 영토적 통일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통일이었기에 석탑 양식이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삼한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자신감으로 통일 국가의 위엄과 포부, 기상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인지 통일신라 초기 석탑은 그 규모에 있어 엄청난 크기의 거탑(巨塔) 양식을 띄게 되는데 그 첫손가락에 꼽는 것이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이다.
감은사(感恩寺) 터(址) (사적 제31호)
태종 김춘추(무열왕)의 아들 제30대 문무왕은 백제 부흥군과 고구려군을 패퇴시켜 아버지가 마무리하지 못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왕이다. 그렇게 통일과 영토 확장을 성취한 문무왕이 끝내 마음을 놓지 못한 것은 동해 건너 왜(倭)였으니 죽어서도 그들의 침략을 막아내고자 스스로 용(龍)이 되기를 원하였다.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보 제112호)
감은사 금당 터 앞에 동서로 마주하고 선 2개의 삼층석탑은 현존하는 신라 석탑 중 가장 높고 장대한 규모이며 그럼에도 일체의 장식을 배제하여 검소한 절제미가 아름다운 거탑(巨塔)으로 쌍탑 형식의 시작으로 알려졌다.
동·서 두 탑은 서로 동일한 양식으로 세워졌는데 낮은 하층 기단과 상층기단, 그리고 3층 규모에 상륜부는 남아있지 않고 3m가 넘는 크기의 철주(鐵柱)가 노출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표현하는 등 목조건물 형식을 살렸으며 상층기단과 하층기단 공히 12장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는데 하층기단에는 각 면에 3개의 탱주(가운데 기둥)와 좌우에 우주(모퉁이 기둥)를 새겼고, 상층기단에는 각 면에 2개의 탱주와 좌우에 우주를 새겼다.
하층 기단의 상부 덮개석은 네 귀퉁이에 ㄴ자로 굽어진 귀틀석을 사용하여 (16개가 아닌) 12개의 판석으로 가능하며 하층기단 덮개 위로는 상층기단을 받치는 2단의 받침이 있고, 상층기단 덮개석은 아랫쪽으로는 1단의 부연과 위쪽으로는 1층 몸돌을 받치는 2단의 받침이 있다.
몸돌은 크기가 너무 크다 보니 하나의 돌로 만들 수 없어서 1층의 경우 모서리 기둥 우주를 4개 세우고 그사이에 면석을 끼운 형태이며, 2층은 4개의 판석으로 세웠고 3층은 사리공을 만들어야 하니 하나의 돌로 세웠다.
지붕돌 역시 상부 낙수면과 하부가 각각 별개이며 전체적으로 4분할하여 총 8개의 석재로 조립하는 형식을 취하였으니 거탑의 지붕돌로 부득이한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 아래는 5단 받침이며 윗면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에 수평 지붕은 끝부분에서 살짝 들려진 모습이다.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과 다음에 소개할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그 외형과 크기가 비슷하고 심지어 석재의 수량과 각부의 크기도 오차범위 내에서 일치한다고 하니 아마도 동일한 설계에 따라 건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학자들은 감은사지 동탑이 가장 먼저 세워지고 그다음에 서탑, 고선사지 탑 순서로 세워졌다고 보는데 그 까닭은 앞에서의 시행착오가 뒤에서는 해결이 되는 것을 보고 그리 추정한다고 한다.
일례로 감은사지 동탑의 경우 노반 위에 세워진 철제 찰주가 노반과 3층 지붕돌을 꿰뚫고 3층 몸돌에 고정되었는데 3층 몸돌에 사리공이 있어 충돌되는 현상을 서탑에서는 위치를 조정하여 충돌되지 않도록 개선한 점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석탑 내부를 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거탑(巨塔)의 경우 기단부와 몸통의 내부 공간은 잡석 등으로 채우는데 이 부분에 뱀들이 모여 사는 등 문제가 되니 이후 탑의 몸집을 줄여 가급적 하나의 돌로 세워 공간이 생기지 않게 한다.
거대한 석탑이지만 기단부와 몸돌에 새긴 기둥 조각은 엔타시스 기법을 적용하였고 기와지붕에 낙수면을 표현하는 등 목초 건축을 충실하게 구현했음을 알 수 있다.
감은사 동·서삼층석탑은 옛 신라의 1탑식 사찰이 쌍탑(雙塔)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여주며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적인 양식의 시작이 되어 이후 석탑은 규모를 줄여가면서 완성도를 높이게 되니 그 완성이 불국사 석가탑이다.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舍利莊嚴具) (보물 제366호, 제1359호)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1959년에 서탑을, 1996년에 동탑을 해체 수리하였는데 그때 각각 3층 몸돌과 3층 지붕돌 사리공에서 금동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네모난 사리함은 사천왕을 별도로 주조하여 사방 각 면에 하나씩 부착하였으며 그 좌우로 문고리를 달았다. 목조건축물처럼 보이는 사리기(舍利器)는 네모난 기단 위에 사리병을 모신 몸체가 있고 그 위에는 수정으로 만든 보주를 얹었다.
사리기(舍利器)의 기단과 몸체 부분은 비교적 양호하나 그 윗부분은 부식이 심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몸체에 8개의 감실을 만들어 8부 중상을 새긴 것이나 윗부분 네 모서리에 주악상을 새긴 것 등은 감탄을 자아낸다.
동탑의 사리장엄기도 동탑과 비슷한데 외함에는 사천왕상을 만들어 붙였고, 사리기(舍利器)는 기단부와 몸체 위에 화려한 치장을 한 지붕(天蓋, 천개)을 씌웠는데 기단부 네 귀퉁이에는 사자가 보인다.
동, 서탑의 사리장엄구는 신라의 금속공예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며 불교문화가 얼마나 발전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내부에 들어있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할 기회를 기대해 본다.
<계속>
*글/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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