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4.19 15:38 | 수정 : 2024.04.19 15:43

고선사지 삼층석탑 (高仙寺址 三層石塔) (국보)

삼한을 통일한 신라가 국가적 자신감으로 세운 거탑(巨塔)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외형과 크기가 비슷하고 심지어 석재의 수량과 각부의 크기도 오차 범위 내에서 일치하는 또 다른 거탑이 고선사지 삼층석탑이다.

물론 전체 높이는 9m로 감은사지 석탑에 비하여 다소 낮아졌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설계와 솜씨로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석탑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게 된다.

고선사(高仙寺)는 원효대사가 주석한 절로 그가 686년(신문왕 6)에 입적하였으니 이 탑이 세워진 시기는 그 이전으로 보이며, 경주 보문단지 위쪽에 덕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웠다.

고선사(高仙寺) 터(址)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지나 오르막 언덕길이 시작되면 오른쪽은 바로 토함산 뒤편의 가파른 산악지형이지만 왼쪽으로는 보문호만큼 큰 인공저수지가 하나 더 보이는데 바로 덕동호이다.

덕동호 변을 따라 계속 달려가면 굽이굽이 황룡 계곡을 지나 추령을 넘어가게 되는데 물론 도로는 터널로 많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고개턱을 넘어 내리막길을 마저 달려가면 감은사지 쌍탑이 나오고 대왕암이 있는 동해에 이르게 된다. 이 길이 바로 감은사 가는 길, 감포 가도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히는 길이다.

70년대 경주 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저수지 덕동호는 경주 일대 상수원과 농업용수는 물론 아래편 보문호의 수위 조절 기능도 갖춘 다목적 인공호수인데 바로 그 덕동호 어디쯤이 고산사가 있던 곳이었으나 저수지 둑을 막고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절터는 물속으로 잠기고 말았으며, 삼층석탑을 비롯한 유물들은 경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고선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원효(元曉)가 머물렀던 절로 전해지는데 1914년 5월 이 절의 삼층석탑 주변에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조각이 발견되었는바, 서당화상은 원효대사를 말하며 그의 손자인 설중업이 할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고선사와 원효대사의 상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高仙寺址 三層石塔) (국보 제38호)

국내에 국보 석탑이 모두 31기인데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감은사지 동, 서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초기 거탑(巨塔)으로 손꼽히며 이중 기단에 삼층 탑신이라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의 시원(始原) 양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상륜부에 커다란 찰주가 남아있어 더 커 보이지만 고선사지 삼층석탑과는 쌍둥이처럼 닮은 석탑이며 오히려 고선사지 석탑이 그 이후에 세워진 탓에 더 생동감이 들고 1층 몸돌에 문비(門扉)를 새기거나 장식물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어 더 발전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본래의 자리를 떠나 경주국립박물관 뒤 야외전시장에 서 있는 고선사지 삼층석탑. 신라초기 거탑의 하나로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어 고마운 탑이다.
본래의 자리를 떠나 경주국립박물관 뒤 야외전시장에 서 있는 고선사지 삼층석탑. 신라초기 거탑의 하나로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어 고마운 탑이다.
이 거대한 석탑은 모두 82장의 석재로 이루어졌는데 상,하층 이중기단에만 스무장의 석재가 쓰였다. 전체적인 구성은 감은사지 석탑과 같다.
이 거대한 석탑은 모두 82장의 석재로 이루어졌는데 상,하층 이중기단에만 스무장의 석재가 쓰였다. 전체적인 구성은 감은사지 석탑과 같다.

전체적인 구성은 감은사지 쌍탑과 비슷한데 상하층 기단 공히 12장의 판석으로 조립하되 하층기단은 3개의 탱주, 상층기단은 2개의 탱주를 넣었으며 하층기단 덮개돌은 12장, 상층기단 덮개돌은 8장 석재로 조립하였다.

1층 몸돌에는 사방 4면 모두에 문비를 새겼는데 자세히 보면 문비 상하와 중간상단쯤 3그룹의 못 자국을 볼 수 있다. 문 장식과 원형 문고리가 달렸던 흔적으로 보인다. 금속성 장식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매우 정교하고 화려했으리라.
1층 몸돌에는 사방 4면 모두에 문비를 새겼는데 자세히 보면 문비 상하와 중간상단쯤 3그룹의 못 자국을 볼 수 있다. 문 장식과 원형 문고리가 달렸던 흔적으로 보인다. 금속성 장식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매우 정교하고 화려했으리라.

3층탑 몸돌은 층별로 구성기법이 다른데 1층은 먼저 4개의 모서리 기둥(우주)을 세우고 그사이에 면석을 놓았는데 면석에는 (감은사지 탑에는 없는) 문비가 새겨진 점이 다르며, 2층은 4장의 판석을 돌려세웠고, 3층은 하나의 돌로 되었는데 이는 3층 몸돌 중앙에 사리함을 넣기 위함으로 보인다.

2층과 3층은 1층 몸돌보다 현저하게 작아지면서 상승 비례감을 높이고 있고 각층의 옥개석 아래 층급받침은 모두 5단으로 되어 있으며, 네 귀퉁이가 모두 파손되어 풍경을 달았던 구멍의 흔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선사지 석탑은 탑이 워낙 크고 높아서 지면에서 올려다보면 지붕돌의 5단 층급받침만 보이고 윗부분 낙수면(처마)이 잘 안보여서 모전탑 지붕양식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니 주의해야 한다.
고선사지 석탑은 탑이 워낙 크고 높아서 지면에서 올려다보면 지붕돌의 5단 층급받침만 보이고 윗부분 낙수면(처마)이 잘 안보여서 모전탑 지붕양식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니 주의해야 한다.
상륜부에는 감은사지 쌍탑과 달리 찰주는 없고 노반과 복발, 앙화가 남아있는데 크고 높아서 잘 안보이지만 노반이 일반 탑과는 달리 윗부분 즉 복발 받침대가 노반 몸체보다 작은 특징이 있다. (아래 그림 참조)
상륜부에는 감은사지 쌍탑과 달리 찰주는 없고 노반과 복발, 앙화가 남아있는데 크고 높아서 잘 안보이지만 노반이 일반 탑과는 달리 윗부분 즉 복발 받침대가 노반 몸체보다 작은 특징이 있다. (아래 그림 참조)

감은사지 동·서 쌍탑과 고선사지 탑. 이 3개의 석탑은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살펴보니 감은사지 동탑 → 서탑 → 감은사지 탑 順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그 근거는 탑을 만들 때 불편하거나 시행착오성 부분들이 그다음에는 개선된 것 등으로 그러하다고 한다.

이 세 석탑(감은사지 동·서탑. 고선사지탑)의 석재 수량이 같고, 각 부의 크기가 오차 범위에서 일치함은 결국 같은 설계에 따라 건립되었다고 보여지며 이 탑들은 나원리 오층석탑과 황복사지 삼층석탑 등을 거쳐 더욱 발전하고 완성되어 마침내 불국사 삼층석탑으로 정형화(定型化)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계속>

*글/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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