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5.22 10:33

산업혁명 시대에 권리장전이 등장했다.
지금은 컴퓨터 혁명 시대가 시작되었다.
미래의 디지털 권리, 과연 평등할까?
부디, 디지털 권리장전 그림자 틈새마다
인간이거나 인공지능에 의해
소시민의 꿈 조각들이 파묻히지 않기를!

내 삶이란 내 권리 주장의 반복이었다

디지털이란, 사람마다 시간에 따라 세상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니, 어쩌면 서로 알아보기 쉽게 어떤 경계를 지어야 하기에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그 경계를 누가 봐도, 혼란스러울 때마다 손가락 꼽으며 하나둘셋 세듯, 누구나 떨어져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는 거라며 고개 끄덕여야 하기에 그렇다. 특히, 컴퓨터로 인해 결정하는 일이 빨라지기에, 생각의 차이를 일정하게 구분 짓는 일이 필요하니 더 그렇다. 그러니, 디지털 생활이란 필요조건이요, 디지털 권리는 충분조건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

얼마 전부터 디지털 권리장전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새삼 한국이 세계 디지털 사회의 앞에 서 있음을 느끼게 했다. 새로운 IT 기술이 지구촌에 나타날 때마다 한국에서 먼저 시범 운영하고 나서 그 결과에 따라 세계화가 진행된다고 하고, 나아가 세계 반도체 생산국 1위니 한국이 세계 디지털 사회의 길을 인도하는 차원에서 볼 때 당연한 순서일 수도 있겠다. 

기존의 권리장전이란 말은 산업혁명이 처음 발원한 영국에서 사용되었다. 수천 년 이어져 온 유럽 각국 왕정의 권력이 일반 시민의 손으로 이동하는 씨앗이 움틀 때였다. 국가가 설립되었을 때부터 누적된 중앙집중 권력, 그 힘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제시된 인간 기본 권리에 관한 몇 개 원칙이 나열된 것만으로도 혁명이란 말은 무색하지 않다. 물론, 자본가와 권력가가 서로 등에 업고, 역사를 요리조리 입맛에 맞게 만든 수단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번 디지털 권리장전이란 선언적 문서를 만들기 위해 참여한 이들은 누굴까? 아무래도 권리장전을 먼저 이해하고, 그래서 그 후속 조치로 만들어진 각국 법안을 활용해 기반을 먼저 잡은 기득권층일 것이다. 다 아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는 힘의 피라미드 꼭대기는 그 높낮이 위치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상상할 기회가 많은 이들이 문서 작성에 참여했을 거다. 물론 현재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르고 모여서 만들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는 않지만.

수백 년이 흐르면서, 최근 제4차산업혁명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말은 이미 ‘산업혁명’이란 말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고, ‘컴퓨터 혁명’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새로운 디지털 문명의 시작으로서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디지털 권리장전은 컴퓨터 문명이 우여곡절 자리 잡게 될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 떳떳한 삶이란, 아니 그 역사란, 내 권리 주장의 반복이 맞다. 디지털 권리를 위해 또다시 내가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 그런데, 도무지 무엇인가 설익은 밥알을 보는 듯하니 어떻게 된 것일까.

나의 디지털화는 내 가치 보존의 수단

지난 30년 넘게, 나는 유별나게 컴퓨터 문화에 관심을 가졌었다. 만나는 친구나 누구에게나 컴퓨터 단어를 공동 주제로 삼으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만난 분들은 당연히 살아가는 수단으로서 컴퓨터를 단순한 도구로 사용해 온 것 같다. 이들에게 컴퓨터 문화니 디지털 문화니 하는 말은 그저 음식문화, 정치문화, 자동차문화 등과 같이 새 물건의 사용 설명서의 마지막 장 귀퉁이 문구도 안될 것. 그런데도, 나는 그 모든 문화라는 이름의 가치는 디지털화가 되리라며 이렇듯 떠들고 있다. 어서 디지털화란 현상에 눈코입귀 모두 열라고.

내 좁은 시각에서는, 안타깝게도, 내 말을 고개 꺄우뚱거리며 들었던 그들은,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도 뭐가 아름다운지 어떤지 모르고, 하루하루 현실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나만이 앞서고 아름다운 생각만 한다고 해서, 누가 밥 먹여 주냐?’고. 그 어떤 이론이 현실로 되기까지 그 많은 사람의 희생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래, 그 희생양이 되는 일, 과연 괜찮은 삶이냐?’고 비웃어 물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답이든, 그 개인에겐 그때마다 옳은 답이다. 그러나, 정답은 시간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자주 잊는다. 누구나 옳은 결정을 할 수 없기에, 나 또한 그때마다 성찰이니 반성이니 하는 통과의례를 반복하곤 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간 행동을 포함해, 현존하는 자연 가치를 인간과 인간이 서로 높낮이를 매기고, 이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공존해왔다. 이 기록은 모두 어떠한 방법으로든 문서로 존재했다. 그랬다. 이는 나부터 먼저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는 본능이었던 것. 누구나 내가 살아있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맛보고 싶었을 것. 누구라도 만끽하려는 그 행복감이란 수많은 도토리 키재기 모양이겠지만, 대부분 현재 살아있는 나는 오로지 나만의 의미라며 기록을 남긴다. 우리 인간이 남기는 가치요, 내 가치다. 

어쩌면, 생명체 중 인간만이 가치를 보존하는 그 많은 방법을 만드는 듯하다. 그랬다, 가치는 계속 누적되고 사라지고 변형되기를 반복하며 현재를 존재시켜왔다. 나 또한, 생존하기 위한 나만의 가치 기준을 정하는 그 기회를 맞이하고 싶은 것이리라. 물론, 컴퓨터 사용 40년 넘게 지나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가치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에, 내게 주어진 기회를 물끄러미 바라만 본 적이 있었다. 기회는 언제나 만들어지기에, 너나없이 컴퓨터라는 이기를 먼저 사용해 내 입지를 더 견고하게 만들려는 욕구는 인지상정이다. 나의 디지털화가 적절히 진행되어야 가까운 미래에도 내 가치 보존이 내가 원하는 만큼 될 것 같으니 그렇다.

세상 디지털화의 끝자락 미리 보기

이즘에선 컴퓨터 발전이 한 10년 20년 멈추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나의 가치가 너무 쉽게 비교되는 일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컴퓨터를 사용하며 주고받고 있는 가치가 컴퓨터 안으로 들어갔다가, 컴퓨터 속에서 돌아다니다가, 컴퓨터 밖으로 나오는 일상생활로 인해 이미 내가 언제 어디서든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것. 이렇듯, 디지털이란 이름으로, 그 복잡한 경우의 수가 숫자로 표시되면서, 나의 가치가, 점점 의미가 단순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것인가. 이러한 현상이 외로움을 더 외롭게 느껴지게 하니 어쩔 것이냐는 거다. 좀 천천히 느끼고 싶을 수밖에.

그럴까, 시간이 흐를수록, 디지털화되고 있는 나는 점점 단순해지는가. 그래, 단순해질수록 나는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행복이란 정의를 더 잘게 부수어야 하는가. 허허, 행복도 디지털화시켜, 세포분열 일으키듯, 새로운 그 어떤 행복의 한가락 줄기를 잡고 매달려야 하는가. 그 어느 행복의 끝자락에 손가락을 대고, 디지털 세계에서도 행복은 존재한다며 외쳐야 하는가. 물론, 외쳐야 한다. 나만의 소리를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NFT나 암호화폐에 나의 가치를 얹히고, 저 디지털 세상에서,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내 가치를 교환하며 큰 소리로 웃지 않겠는가.

아마도, 내 기록을, 그래 인간의 기록을, 그 무한대의 기록을, 인간은 아니 컴퓨터는 어떤 가치가 있다며 서로 저희끼리 연결하려 할 것이다. 인간의 기록을 인간이 서로 관련짓고, 그 결과를 먼저 차지하려 했으니, 컴퓨터도 서로 먼저 연결한 기록이 더 우월하다고 처음부터 우선권을 움켜쥐려 할 것은 자명하다. 인간이 가치 교환 수단으로 ‘인간 화폐’를 만들었으니, 결국 컴퓨터도, 인간처럼 컴퓨터 간의 가치 교환 수단으로 ‘컴퓨터 화폐’를 만들고, 또 삐딱하게도 아바타끼리 사용하는 ‘아바타 화폐’로 만들리라.

어쩌면, 컴퓨터 문명은 결국 인간이 아바타 이상으로 진화하려 할 때, 그땐 더 진화하지 못하고 공중 분해되리라 상상해두어야 할까 보다. 참 쓸데없는 시간이 하늘을 찌른다. 이렇게 컴퓨터 문명이 끝나게 될 때, 인간 몇몇일망정 지구 어느 귀퉁이에서 흙을 만지며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웃고는 있을까. 뭐 서서히 그런 사람들이 줄어가길 하겠지만, 그래 지구도 어떤 별도 결국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기에, 사라지며 사라지는 기록을 어떻게든 남기려 하리라.

디지털화될수록 사람은 비슷해진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또 그 누적 결과가 인간 저마다 어떤 형태의 자료로 정형화되리라고 한다. 그 와중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란 용어가 인간 생각마다 그래서 행동마다 곳곳 얽어져 있을 것. 인간의 상상, 아니 나의 상상이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더 생존하고 싶은 방향으로 내 새로움을 만드는 일일 것. 그러니, 최고의 생성형 인공지능의 한 결과란 결국 지금 내 상상의 하나에 불과할 수밖에. 누구나 상상할 것이기에, 그 상상이란 누구나 하는 것이기에, 비슷해질 수밖에.

인류가 삼삼오오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유유상종 생겼다. 이래저래 인간과 비슷해져 가고 있는 로봇 세상의 초입인 지금도 유유상종은 그대로 유효하다. 허, 참 그런데도 말이다, 나이가 한 살 먹어감에 따라 사람이 서로 비슷해져 감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춥든 덥든, 다투다 껴안다가를 되풀이하든, 그 어느 나라든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몇 연도란 숫자에 익숙했다가, 새 연도를 맞이할 때마다 ‘무엇인가 철이 들었다’라는 새로움에 고개를 숙이는 나다. 이렇게 나이를 먹는 일이란 서로 무엇인가 서로 비슷함을 깨달아 가는, 허 이도 디지털화되어가는, 또 요즈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비슷해진다는 것에 싫증을 느끼는 나는 어떤 상태에 머물러, 나와 행복에 놓인 다리에 올라,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놓인 그 무수한 단어들 사이에 놓인 다리를, 이도 디지털화의 하나라며 만들고 또 그곳을 건너며, 그 어느 다리에서 소크라테스를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고 아이들을 생각하게 될까. 수없이 되풀이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마다, 내가 나를 뭐 어떠하다고, 내 행복은 이러하다고, 나를 조각조각 디지털화시켜 나열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지금까지 생존해오면서 확인된 하나는, 하루 며칠 몇 해가 지나면서 문득 느끼는, 내 한계의 숫자요 울타리다. 특히, 어쩌면, 나는 컴퓨터를 사용해 내 느낌을 디지털콘텐츠로 남기다가, 그 누구와 어떤 느낌을 주고받다가, 이것도 내 길이라며 어느 길에서 문득, 문득, 멈추리라. 그 과정마다 있었던 그 기록들은, 추억이든 자랑거리든 고만고만하게, 내 컴퓨터 어디에 남겨지고 있다. 물론 나는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가장 먼저 그 기록을 옮기곤 한다. 다른 사람도 그럴까? 아마 그럴 거다. 이렇듯, 컴퓨터의 대를 이어 옮기는 기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더 새롭게 거듭난다.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이 가지는 감정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무한대로 연결하려 할 것이다. 이는 내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한, 인공지능도 서로 비슷한 모양새가 되리라. 그래야 맞다. 내가 나이 들수록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고 싶어 하니, 그 어떤 인공지능도 시간이 지나고 지나면 다른 인공지능과 비슷해질 거라고 대답하게 될 것. 아무리 많은 문구를 나열해도 그 순서만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라고 반복해 대답할 것. 그래, 사람처럼, 디지털도 인공지능도 나이를 먹으니 그러하리라.

디지털 권리를 지키는 나만의 비결

지금도 많은 사람이 SNS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곧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사실. 안타깝지만, 내 주변 하나하나가 디지털화될수록 나는 고립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점점 누구나 혼자 있을수록 내 거울이 맑아지도록 나 혼자 사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리라. 이것이 컴퓨터 문명사회의 특징 중 하나니 나 또한 미리미리 적응해야 할 거다.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려다가 머뭇거리는 동안, 갑자기 몇 년 훌쩍 지날 때마다, 가끔은 ‘사람이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하는 두려움이 생길 것. ‘아바타가 사람인지’, ‘휴머노이드가 사람인지’ 뭐 도무지 구분되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사람인지 뭔지 모르는’ 그 어떤 착각을 하며, 내 뜻과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져 있으리라는 두려움이다.

분명, 디지털 권리장전은 디지털 권리를 이미 선점한 사람들이 내 권리 지키기 위해 선언하듯 일방적으로 발표된 느낌이다. 지금 쥔 디지털 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미리 법의 잣대를 예상해 짜놓은 느낌. 어떠한 법이든 먼저 만든 사람들이 활용해 그들만의 탑을 더 높게 쌓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이미 물려받은 탑을 더 멋지게 장식하고, 내가 디딘 탑 위에 화려한 승리의 깃발을 흔들곤 한다. 함께 만들어 간다는 느낌의 신기루 같은 그 탑에 홀려, 내 디지털 권리가 어느 땅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게 그저 하늘 같은 그들 디지털 탑만 쳐다보다가 그대로 망부석 같은 돌이 될 것. 그렇게, 나는 저 컴퓨터 문명의 그림자에 묻혀 하나의 어두운 점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저 먼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에 대해 미리 당겨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세상 모습이 그대로 미래 모습이 되리라는 것도 쓸데없는 걱정이다. 나의 살아온 지난날이 원하는 것 몇 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구절절 혼란스러운 말들을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굳이, 디지털 권리장전의 뒷그림자를 들추는 이유는 그나마 밟히지 않은 내 권리 내 꿈 조각 줍는 자신만의 비결을 얼른 눈치챘으면 해서다. 

디지털 권리를 지키는 비결, 아니 나를 지키는 비결은? 모두 알고 있지만, 나의 경우, 그것은 나 자신이 인간임을 계속 느끼는 일이다. 매번 잊지만, 지금 내가 밥을 먹고 걷고 자고 깨고 하는 것처럼, 가끔 떠올리는 나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다. 이렇듯, 나도 자연의 한 생명체라는 사실 확인의 반복이다. 어쩌면, 내 권리란, 내가 한 생명체로서 살아있음의 권리란, 자연에서 태어나, 이 자연에 머물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가짐에서 더 빛나는 것 아닐까. 그렇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평등일 것이냐. 어찌 무한대 인공지능일망정 감히 흉내 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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