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리 동.서삼층석탑 (三層石塔) (보물)
불국사 삼층석탑 이후 탑의 표면에 다양한 조각을 새겨 장엄(莊嚴)을 높이는 경향이 나타나는 석탑들을 알아보는 중이다.
남산사지(南山寺址) 또는 양피사지(壤避寺址)
경주 남산의 동쪽 아래 통일전에서 산 위 칠불암까지 올라가려면 서출지(書出池)를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나타난 노인이 왕에게 '뜯어보면 둘이 죽고, 아니면 하나가 죽는다'고 쓴 봉투를 건넸는데 그 하나는 왕이라고 보고 뜯어보니 '사금갑(射琴匣)'이라고 씌어있어 거문고갑에 숨어 왕을 시해하려던 궁주와 통정하는 僧 2명을 처형했다는 전설이 있는 연못이다.
그런데 이 전설은 이곳 서출지(書出池)가 아니라 조금 떨어진 양피지(壤避池)라고도 하는데 그 두 연못 중간쯤에 남산동 동.서삼층석탑이 있다. 원래 그 자리는 남산사지(南山寺址) 또는 양피사지(壤避寺址)였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아서인지 지명(地名)으로 남산동(예전에는 남산리) 동.서삼층삼층석탑이라고 한다.
남산동 동.서삼층석탑 (보물)
이곳 절 터에 남아있는 2기의 삼층석탑은 불국사 앞마당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동.서 쌍탑이며, 언듯보면 비슷한듯 닮아보이지만 사실은 형식이 다른 두 탑이 마주보고 서 있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동탑은 약 7m 높이로 넓은 이중 바닥돌 위에 큼직하게 네모난 돌 8개를 블럭 맞추듯이 쌓아 커다란 하나의 네모난 기단부를 만들었고 그 위에 올린 3층의 지붕돌은 아래 위로 각각 5단씩 (3층은 4단)을 벽돌 쌓듯이 전형적인 모전탑 기법으로 세워진 석탑이다.
기단부나 몸돌에 기둥을 나타내는 우주와 탱주 조각이 없으며 상륜부는 노반만 남기고 모두 유실되었다.
경주의 신라석탑 답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서탑이다.
서탑은 약 6m가 채 안되어 동탑보다 조금 낮으며 이중 기단에 삼층을 올린 불국사 삼층석탑처럼 전형적인 모습인데 상부기단 한 면에 2구씩 네 면에 팔부중상을 돋을새김으로 새긴것 때문이다.
바로 석탑 표면에 조각을 통한 장엄(莊嚴)을 꾸민 경우에 해당되는데 신라석탑 가운데 가장 먼저 팔부중상을 새긴것으로 알려져 의미가 크며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라고 한다.
팔부중상(八部衆像)은 고대부터 있던 인도 신(神)인데 불교에 흡수되어 불법 등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하며 경전상으로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여러 중생을 의미하는 여래팔부중, 즉 천(天)·용·야차(夜叉)·건달바·아수라(阿修羅)·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摩睺羅伽)를 가리킨다.
원래 고대 인도 신들의 모습이 서역을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점차 투구와 갑옷을 입은 무장한 모습으로 정형화되었으며 석탑의 기단부나 불화 등에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에 조각된 팔부중상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