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0.25 10:23 | 수정 : 2024.10.25 10:31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국보)

경주에 있는 신라 석탑들을 초기 거탑(巨塔)부터 시작해서 완성본이라는 불국사 삼층석탑을 거쳐 다양한 조각을 새기고 변화되는 외형을 보이는 이형(異形) 석탑들까지 체계적으로 답사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파격적으로 달라진 모습의 석탑이 하나 있으니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소재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이다.

정혜사(淨惠寺)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근처 이언적의 독락당을 지나 정혜사 옛 절터에 국내에서는 만나기 힘든 십삼층 석탑이 있다.

정혜사는 회재 이언적(1491~1553)이 어려서 공부하러 드나들었다던가? 또 그가 한양에서 순탄하게 잘 나가다가 41세 때 당시 권세가이자 실력자이던 김안노의 복귀를 반대하다가 삭탈관직당하고 낙향한 뒤 독락당을 짓고 글 읽으며 세월을 보낼 때 정혜사 스님과 깊게 교분하면서 왕래하였다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자 계정(溪亭)에 양진암(養眞庵)이라는 절 이름 현판을 달아놓고 맘 편하게 무시로 드나드시라고 배려하였다는, 그 정혜사는 1834년 큰 화재로 타버리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혜사는 회재가 죽고 그를 배향한 옥산서원이 창건되자 서원에 편입되어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종이를 만들어 공급하거나 신발 등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는 역할을 하며 존재하였었다고 하니 유교에 예속되고 난 후에야 존립을 보장받은 셈이다. 생존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나마 유지해 오던 절집은 흔적도 찾기 어렵고 보기 드문 십삼층 석탑 하나만을 남겼다.

십삼층 석탑

숱한 국보급, 보물급 아니 비지정 문화재 석탑까지 몽땅 찾아보아도 십삼층 석탑은 찾기 힘들다.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십층석탑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실내에 세워진 경천사지 십층석탑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높은 층수의 탑들이며 듣기로는 북한의 평안북도 영변의 보현사에 팔각십삼층석탑이 있다고 할 뿐 어디에도 십삼층은 찾기 힘드니 꽤나 귀한 이형석탑이다. (원각사지, 경천사지 석탑이 원래는 십삼층이었다는 주장도 있어 참고로 한다.)

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외우다시피 알고 있는 신라 석탑의 전형 '2단의 기단 위에 삼층석탑'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기단은 1단뿐인데 그것도 다듬지 않고 큼직큼직한 잡석들을 거칠게 쌓아 올리고 흙을 채운 토단(土壇)이다. 전하기는 1911년 도굴꾼들이 위에서부터 3개 층을 떼어내다가 발각되어 도망친 후 그대로 방치되다가 1922년경 일본인들에 의하여 복원 수리되었다고 하는데 상세한 수리 내용은 전해지지 않으며 그때 기단부를 시멘트로 고착하였다가 그마저 파손되어 큼직한 잡석으로 기단을 구축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토단 위에 2단의 석재 기단을 깔아서 몸돌을 받치는 지대석으로 삼았으며 그 위에 가장 커 보이는 부분이 1층 몸돌과 지붕돌인데 마치 위에 얹혀진 작고 촘촘한 열 두 층의 탑신을 받치는 큼직한 기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홀로 비대할 정도로 커 보이는 저 부분이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의 1층 몸돌과 지붕돌임은 분명하다.

석탑의 1층 부분. 구석의 기둥 즉 우주가 지나치게 크고 돌출되어서 몸돌이 안으로 들어가 보인다. 몸돌 부분도 중앙을 비우고 짜맞추니 자연스레 감실이 생겨 네 면마다 하나씩 부처님을 모실 공간이 생겼다.
<석탑의 1층 부분. 구석의 기둥 즉 우주가 지나치게 크고 돌출되어서 몸돌이 안으로 들어가 보인다. 몸돌 부분도 중앙을 비우고 짜맞추니 자연스레 감실이 생겨 네 면마다 하나씩 부처님을 모실 공간이 생겼다.>

1층 몸돌 위에 지붕돌을 바로 얹은 것이 아니라 석 장의 받침돌을 점차 커지는 순서로 얹어 3단의 층급 받침을 이루었고 비로소 그 위에 큼직한 지붕돌을 얹었는데 네 귀퉁이는 솟아올랐으며 지붕돌 중앙에 얹은 굄대로부터 네 귀퉁이로 이어지는 처마선을 보면 살며시 도드라지게 만들어 목재 건축물의 기와지붕 못지않은 곡선미를 살리고 있어 감탄스럽다.

이렇게 1층만 보면 비례를 맞추어 나머지 12층을 어떻게 얹을까 걱정스러운데 막상 1층 지붕돌의 굄돌 위로는 앙증맞게 줄어든 열 두 개의 층 탑이 매우 촘촘하게 쌓은 방식이다. 소위 밀첨식(密?式)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2층부터 13층까지의 열 두 층 탑은 각각 12개의 몸돌과 지붕돌이 아니라 돌 하나가 지붕돌이자 그 위에 다음 층 몸돌을 함께 지닌 모습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몸돌은 없고 지붕돌만 12개를 포개서 얹은 것처럼 볼 수도 있으니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1층 지붕돌 중앙에는 네모난 굄돌이 있고 그 위로 급격히 줄어든 크기의 2층부터 13층까지가 올려져 있다. 각 층돌은 아래부분은 1층 지붕돌과 마찬가지로 3단의 층급받침을 조각하였고, 지붕 위로 솟은 부분은 다음 층을 받치는 굄돌이 아니라 다음 층의 몸돌이 되는 것이다. 즉 돌 하나에 아래 층 지붕과 위 층 몸돌이 함께 있는 보기 드문 이형석탑이다. 그럼에도 올라갈수록 일정하게 고른 체감률을 보여 날씬하고 미끈해 보인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다.
<1층 지붕돌 중앙에는 네모난 굄돌이 있고 그 위로 급격히 줄어든 크기의 2층부터 13층까지가 올려져 있다. 각 층돌은 아래부분은 1층 지붕돌과 마찬가지로 3단의 층급받침을 조각하였고, 지붕 위로 솟은 부분은 다음 층을 받치는 굄돌이 아니라 다음 층의 몸돌이 되는 것이다. 즉 돌 하나에 아래 층 지붕과 위 층 몸돌이 함께 있는 보기 드문 이형석탑이다. 그럼에도 올라갈수록 일정하게 고른 체감률을 보여 날씬하고 미끈해 보인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다.>

10층 이상의 다층탑은 중국적인 탑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경주 망덕사(望德寺) 십삼층 목탑이 중국 황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데서 그리 해석하는 듯한데, 그것만으로는 이것이 왜 중국풍이고 왜 하필 13층인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경주 석탑중 전형을 벗어난 매우 특이한 십삼층 탑이다.

<계속>

*글/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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