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사지 삼층석탑 (보물)
경주에 있는 신라 석탑들을 시대 순서에 따라 석탑의 외형적 주제의 변화를 알아보는 탐방을 이어왔는데 이제 무장사지 삼층석탑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삼한을 통일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신라의 거탑(巨塔)에서 출발하여 크기는 줄어들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다가 마침내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신라석탑의 완성을 보았으며 이후 석탑의 표면에 다양한 조각을 새기거나 부분적으로 외형을 변경하는 이형(異形) 석탑까지 체계적으로 답사하였다.
무장사지(鍪藏寺址)
경주시 암곡동, 보문호 윗쪽의 덕동호 안쪽 깊숙한 무장산 골짜기에는 태종 무열왕이 삼한 통일 후 평화를 기원하며 투구와 병기들을 묻었다고 전하여 산 이름이 무장산이며 억새 군락지 명소로 경주시민들이 즐겨찾는 주말 산행지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산속 계곡이 깊고 별다른 안내표식이나 도로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찾아가기가 어려운 곳이었으나 최근에는 입구에서 통제하여 절터까지 차를 타고 갈 수는 없지만 걸어가기 편안한 도로 정비와 안내표식 설치 등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답사의 발길은 경주시내 여타 사적에 비해 뜸한 편이다.
이곳에 원성왕의 부친 김효양이 숙부 문무왕을 추모하여 절을 세우니 무장사(鍪藏寺)인데 소성왕의 왕비 계화왕후가 먼저 승하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위해 아미타전에 아미타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사적비와 삼층석탑, 석등 옥개석 등이 남아 있으며 그동안 깨어진 아미타불상 조상 사적비편 3조각이 발견되었는바 그로인해 이곳이 무장사지임이 밝혀졌고 나머지 비편조각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조사기록이 확인되었다.
현재는 쌍거북 비신받침을 살리고 비신도 새로 만들어 사적비를 복원하였다. 또한 무너진 상태인 삼층석탑도 1963년 훼손된 일부 부분을 복원하여 세워놓았다.
무장사지 삼층석탑 (보물)
1931년 발견 당시 무너진 상태였으나 1963년에 상층기단 갑석과 상륜부 등을 보완하여 복원하였고 보물로 지정되었다.
무장사지 삼층석탑은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신라석탑, 이중 기단에 삼층 석탑으로 5m 남짓한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인데 하층기단에는 중앙에 2개의 탱주를 새겼으나 상층기단에는 중앙에 탱주를 새기지 않고 전면에 꽉 차게 큼직한 안상 2개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상층기단 전면을 꽉 채운 커다란 안상은 칠곡 기성동 삼층석탑(보물)이 무장사지와 같은 모양으로 2개를, 영동 영국사 삼층석탑(보물)은 전체가 꽉 차게 1개를 조금 단순화한 모양으로 새겼는데 신라 석탑의 변화중 흥미로운 부분이다.
< 끝 >
*글/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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