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4.25 10:49 | 수정 : 2025.04.25 10:50

나는 본업이 인공지능 분야다 보니 매일 최신 소식을 접하고 있다. 무척 힘든 것은 관련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내일 아침 발표할 자료를 작성하고 잠들면 밤사이 새로운 시스템이나 기술 관련 뉴스가 뜬다. 아침이면 내가 쓴 자료는 구식이 되고 다시 써야 한다. 이런 시간의 간격이 몇 주 혹은 며칠 단위로 이뤄지니, 기술의 진보가 얼마나 빠른지 체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알아서 어떤 일들을 척척 해주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념이 있는데, 에이젠틱 인공지능(Agentic AI)과 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다. 전자는 좀 더 넓은 의미와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고, 후자는 인공지능이 하나의 제한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일요일 제주도에 놀러 가려는데 적절한 숙소를 검색하고 예약해줘” 같은 것은 에이전트, “1주일 동안 미국 여행을 할 텐데, 지금 내 재무 상황을 고려해서 코스를 알려 주고 여행경비 마련 방법도 제안해줘” 하는 것은 에이전틱 인공지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완벽하게 개념이 분리된 것은 아니므로 두 개념을 유사하게 생각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사진출처=와인21

와인업계에서 인공지능이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기반으로 블렌딩을 실험하고, 각 요소별로 원가나 포도 상태를 검증하는 실험을 자동화하는 것이다. 와인 생산자 입장에서 소비자 취향에 맞게, 그리고 테루아의 상태에 맞춰 적절한 블렌딩 비율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실험실 수치로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은 잔당(남은 설탕의 수준), 산도, 알코올 도수 정도 등이겠지만, 이 정보로도 와인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의 맛을 유추할 수 있다. 포도 품종의 특징도 있고 기본적인 향에 대한 정보도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여러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값을 유추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 인공지능이 전문가들의 블렌딩 전문 지식을 학습한 뒤 다른 포도원에도 적용하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포도밭 관리를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이다. 포도나무의 가지치기는 한 해의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미지 인식과 이전에 학습된 기후 정보, 토양 정보, 그리고 숙련된 전문가의 포도나무 가지치기 기술을 학습한 뒤, 로봇이나 농업 자동화 기기들이 이를 가지치기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포도가 성장하는 시기에 로봇이 포도밭을 돌면서 포도잎 때문에 제대로 햇빛에 노출되지 않는 포도송이가 드러나도록 지원하거나, 기요(Guyot) 방식의 포도 재배에서 포도 넝쿨의 관리나 잎의 제거, 성장이 더딘 송이에 대한 그린 하베스트도 학습정보를 바탕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수확기에는 새벽 시간에 로봇이 적외선 카메라 정보와 열화상 정보를 토대로 수확이 가능한 포도를 판별하고 수확하는 것도 시나리오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진 테루아에 대한 지식 정보를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생산 과정에 전방위로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유통과 물류 과정은 더욱 자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수입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식검 정보나 생산국가의 행정 서류를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판독한 뒤, 관세사 신고용 정보를 자동 생성하여 통관 과정에 예상되는 행정 절차를 간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검 단계에서는 로봇이 자동으로 검체를 채취한 뒤 별도의 실험 절차를 자동화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 관세사 쪽에 자동으로 전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며, 검체가 채취된 와인은 이동형 로봇(드론이나 자율 주행 로봇 등)이 수입사나 식검을 요청한 기관에 자동으로 반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무작위 식검으로 고가 와인 샘플을 내야 하는 등 기존 업계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문제들도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주문이 있을 경우 이동형 로봇을 이용해 고객이 원하는 위치까지 자율 배송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에 존재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위에 언급한 에이젠틱 인공지능 수준)가 전체 배송 로봇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여러 업무를 통합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들이 지금은 상상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세계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든 생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좋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업무는 과거에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제는 전방위로 적용 가능한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인공지능이 내 와인을 탐내는 일은 절대 없다. 일자리를 잃을 것 같은가? 아니다. 인간은 인공지능의 수행 내역을 계속 모니터링 하고 오류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 번거롭고 스트레스를 받던 업무를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할 뿐, 인간의 책임과 의무는 더 늘어날 테니 인류의 업무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우울한 미래를 예상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으로 인해 더 멋지고 편안한 인생이 펼쳐질 수 있음을 기대하며 인공지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인공지능은 내 와인을 절대 탐하지 않는다. 와인을 마시는 것은 인간임을 강조하며 글을 마친다.

정휘웅 칼럼니스트

-와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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