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아버지를 떠 올리다

    입력 : 2016.08.09 09:53

    온다는 비는 오지 않고 날씨는 푹푹 찌는 날. 지인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반갑게 만나 냉면 한 그릇을 후딱 먹어치우고 느긋하게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쌓인 정담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더워도 너무 덥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몇 해 전에 더 더웠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영화 한 편 보자는 제안에 우르르 식당 문을 나섰다.

    극장 안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까지 가세한 탓이다.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가 상영 중인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는 화면을 쳐다본다. 요즘 세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좀비가 나온다는 부산행이 화면이 흐른다. 모두 시큰둥한 얼굴이다. 우리 세대야 귀신 이야기가 맞지, 월하(月下)의 공동묘지라던가. 그 뒤를 제임스 본이 흐른다. CIA의 인간병기 제임스 본이 그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가는 영화란다.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인천상륙작전이 흘러나온다. 순간 눈들이 마주친다. 일제히 이 영화 보자는 눈빛 신호를 주고받는다.

    우리 나이대를 전후한 사람들에게 맥아더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만큼 우리 세대에게 있어 인천상륙작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6.25의 영웅이라고 일컫는 그는 우리나라를 구한 사람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그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한 주역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러져간 진정한 영웅들을 몰랐던 탓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본다는데 제아무리 좀비가 나오는 영화가 관객 천만을 향해 달린다지만 인천상륙작전에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영화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 함락,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된 대한민국.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연합군 모두의 반대 속에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다. 낙동강으로 가는 북한군 보급로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문득 임진왜란의 이순신 장군이 생각났다. 그 당시 이순신 장군도 바닷길을 끊어 일본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전쟁물자가 왜군에게 보급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은 들어맞아 임진왜란은 막을 내린다. 영웅들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유년시절에는 몰랐다. 그저 연합군과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하여 풍전등화 같았던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도움 없이는 오늘의 우리나라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은 나라를 위해 죽어 간 수많은 젊은이들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참혹한 전쟁에 뛰어들었던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 덕분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다.

    그 젊은이 중에는 나의 아버지도 계신다. 지금은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예순을 넘었을 무렵 국방부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6·25 전쟁 무공훈장 대상자라고 훈장을 받아 가라는 연락이다. 우리 남매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 아버지가 무공훈장을 받을 만큼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묵묵히 언제나 온 힘을 다하시는 아버지였다. 자식들을 위해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사셨다.

    사연은 이랬다. 한겨울,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아버지는 대관령에서 싸우고 계셨다. 대관령의 1월은 폭설과 혹한은 평상시에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눈은 허리까지 왔는데 아버지 부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고 한다. 날만 새면 전투는 벌어지고 무전기까지 고장 나 부대 상황을 대대에 전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꼼짝없이 전멸하게 생겼을 때 아버지는 부대를 떠나 북한군을 뚫고 부대가 포위되었다는 것을 알리러 연락병을 자원해 떠났다고 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아버지 부대는 북한군의 포위 상황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공로로 무공훈장을 나왔었는데 지금에서야 주인을 찾았다는 연락이었다.

    그 덕분에 아버진 한쪽 귀의 청력을 거의 잃으셨다. 늘 잘 들리지 않아 답답하게 한평생을 사셨다. 그렇다고 무슨 상이군인의 혜택을 받은 적도 없다. 그 당시 전쟁이 가져온 혼란으로 기록이 사라진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기록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으시다. 그저 묵묵히 우리 남매들을 위해 일생을 사셨다.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그런 아버지가 영웅이시다.

    그런 영웅들이 어디 우리 아버지뿐이겠는가. 이 땅에 많은 아버지나 아들들이 그런 삶을 사셨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삶을 성실히 살아가신다. 그런 분들에게 이제 국가가 작은 성의를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전쟁 후야 나라가 가난했으니 대우를 해 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남아있는 6·25 참전 용사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삶이 좀 더 윤택할 수 있도록 그들의 공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우리의 국력을 그것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영화에 나오는 실존 인물인 임병례 해군 중위, 홍시욱 해군하사, 그리고 7인의 첩보대원과 의용대원 30여 명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