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4.18 16:55

용눈이 오름을 뒤로하고 어동포 해녀 촌에서 저녁을 먹은 후의 급체로 추운 날은 반드시 뜨거운 국물로 몸을 따스하게 속을 풀어준 후에 식사하여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되었다. 어머니가 급체 탓에 사지 마비가 되셨고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어머니의 신체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나는 특히 여행지에서 식사에 매우 예민하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겨울 같은 용눈이 오름의 바람으로 온몸이 얼어서 그 언덕을 내려왔고 영실산행과 오름으로 이미 저녁 시간이 되어 시장기가 느껴졌던 우리는 바쁜 마음으로 어동포에서 얼었던 몸을 녹일 사이도 없이 우럭찜을 먹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이미 내 위는 문제를 알리기 시작하였고 제주 시내는 어둠이 내려 약국을 찾기가 어려웠다. 준비해간 소화제와 사혈 침으로 간단한 처치를 하고 난 후에도 등까지 아파지는 통증을 견디기 어려워 숙소에 준비된 상비약까지 먹은 후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 일어난 아침에 결국은 내과를 찾기에 이르렀다.

급체가 오면 신경 혈을 막아 사지 마비가 올 수도 있다는 처방에 따라 등에 주사까지 맞은 후에야 통증은 진정되기 시작하였고 전복죽으로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남아있는 비행시간을 메우기 위하여 협재 해변으로 향했다. 푸른 물빛을 지닌 해변은 썰렁하였으나 산등성이로 길게 난 길을 따라 노란 유채를 피우고 있었고 곳곳에 아직은 떠나기 싫은 매화가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바닷길이 출렁이는 파도소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길 따라 걸어가는 내내 눈 아래로 보이는 바다의 푸른 물결이 하얀 생선의 비늘처럼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걸어가는 길 아래쪽으로 제주의 상징인 말 한 마리가 늘씬한 몸체를 흔들자 윤기나는 꼬리가 반짝이기 시작한다.

협재 해변이 지니고 있는 유명세처럼 해변에는 예쁜 카페와 예쁜 집들이 바다를 반구형으로 둘러싸고 여름의 화려함을 미리 알리고 있는 듯하였으나 편안하지 않은 나의 위는 걸음을 멈추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올레 18길의 유채꽃 길이 끝나는 곳까지 걷고 난 후 바람기억이라는 카페에서 마시는 카모마일의 향이 협재 해변의 바다 물빛을 닮아 있었다.

제주의 물빛은 유난히 푸르게 흔들리고 올레 길을 따라 이어진 노란 유채꽃의 빛깔은 푸른 물빛과 대조를 이루면서 반짝임으로 우리의 기억을 깊숙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제주를 떠나려는 날의 마음을 알기나 하듯이 유채꽃밭은 현란함으로 우리의 눈길을 끌어내어 마음에 담게 하였다.

늦은 8시 출발로 시간이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작년 가을 동행한 친구가 아파서 은행알을 구워 주십사고 부탁을 하였던 조천읍의 전복 돌솥밥 집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장수 삼계탕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곳을 내비게이터의 안내로 찾아가면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였다. 유난스레 비싼 제주의 음식값이 매끼 매식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정상인지라 비싸지 않은 그곳 주인아저씨의 인심이 고마움으로 남겨져 있었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이야기하자 삼계탕의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라고 권유하신다. 속이 안 좋다 하였더니 그곳의 삼계탕 죽은 기름기가 없으므로 괜찮을 것이라는 자신 있는 말에 주문하였고 실제로 착한 가격의 푸짐한 삼계탕은 우리의 여행 마지막을 즐겁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다음 제주 여행을 대비하여 식비를 아낄 생각으로 이번에는 명함을 챙겨 넣었다.

공항 대기실에서부터 다시 내 통증은 시작되었고 그 통증은 제주 출발 이후 서울 도착까지 이어졌으며 김포공항에서 집 근처 역 도착까지 점점 더 심하게 내 신경을 거스르기 시작하였다. 역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데 아들과 며느리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신기하게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마들렌 효과를 생각하였다. 마들렌 효과란 작은 마들렌 한 조각이 잊고 있었던 과거 어느 시점의 기억을 불러내어 복원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마들렌 한 조각은 시간에 대한 어떤 울림이었다. 그 울림을 통하여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의 특이함으로 나는 순간 사라지는 내 몸의 통증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사랑으로 가능해지는 치유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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