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현재는 일제강점기에 해체 분리된 벽화를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백색·금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폭 75㎝ 가량이다. 양쪽의 두 천부상은 우아한 귀족풍으로 양감이 풍만하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 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을 알게 되었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청
국보 다섯 점을 품은 부석사(浮石寺)
부석사는 전체적으로 오르막 지형에 자리 잡았다. 산 아래 일주문과 당간지주를 지나 천왕문부터 범종루,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까지 거대한 석축 몇 개를 허위단심 올라서서 국보 제17호 석등, 제18호 무량수전과 그 안에 모셔진 제45호 아미타부처님 등 국보 세 점을 만나다 보면 정신없이 살펴보며 놀라고 감탄하다가 이제는 다 본 줄 알고 그냥 하산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조금 더 인내를 갖고 무량수전 동쪽에 서 있는 석탑을 지나 산길을 잠시 오르면 갑자기 속세를 벗어나듯 절집조차 번거롭다는 느낌으로 지금까지의 복잡함이 사라지면서 차라리 절집은 이래야 하지 않나 싶을 만큼 조용하고 차분하다 못해 오롯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작은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의상대사를 모신 부석사 조사당(祖師堂)이다. 이 조사당 건물이 또한 국보 제19호이고, 이제 소개하려는 국보 제46호 조사당 벽화는 이 조사당 내부 좌우에 그려져 있던 벽화였다. 지금은 벽째 따로 떼어내어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어서, 국보 제46호 조사당 벽화를 보려면 조사당이 아니라 성보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조사당(祖師堂) -국보 제19호
비록 국보 제46호인 내부벽화는 뜯겨 성보박물관에 별도로 보관중이지만, 그 벽화가 들어차 있던 조사당 건물 자체도 국보 제19호다. 국보탐방에서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데 조사당이나 무량수전이나 국보가 국보를 품고 있는 것이다. (국보 제19호 탐방기 : https://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17/2015021701806.html)
조사당은 조사(祖師)스님을 모신 곳을 말하는데, 여기서 조사(祖師)는 불교의 한 종(宗)이나 파(派)의 선덕(先德), 후세 사람의 귀의(歸依)와 존경을 받을 만한 승려 또는 한 종(宗)이나 파(派)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열어 주장한 승려에게 붙여지는 칭호이다. 즉, 불교의 한 종파를 처음 개창한 승려를 이어 법통(法統)을 계승한 후대 승려들이 우리들이 조상을 모시듯이 창시조 승려를 모시고 기리며 받드는 것을 말한다. 신라 하대에 이르러 구산선문이 개산하면서 산문별 개산조를 기리는 일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따라서 부석사의 조사당(祖師堂)은 부석사를 처음 창건한 의상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초상화를 모시거나 그와 관련된 불교적인 상징물 등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신앙은 선종(禪宗)에서의 신앙형태이지 의상의 화엄사상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형태였으니, 부석사에 의상을 기리는 조사당이 있다는 것이 사실은 이상한 일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아마도 의상 직후에는 없었으나 선종이 유행하던 시기를 지나면서 부석사에도 화엄종에는 맞지 않지만, 유행에 따라 이를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사대부 양반들이나 스님들이나 조상을 극진히 섬기는 마음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뼈대 있는 양반들은 집안에 사당을 모셔 조상을 섬기는데 정성을 다한다. 특히, 중시조나 파조를 모심에 그 지극함이 실로 국법을 지킴과 다를 바가 없는데, 절집의 스님들도 자신들의 종조(宗祖)나 파조(派祖)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화엄종의 종찰(宗刹)인 부석사에서 선종의 산문에서 개산조를 섬기는 방식으로 조사 스님을 섬기고 모시는 것을 넘어 조사당 안의 벽면에 부처님을 수호한다는 사천왕상과 범천, 제석천의 벽화를 그려 붙인 것은 조사(祖師)에 대한 공경심이 부처님에 못지않은 것임을 나타내는 증표라 할 수 있다.
다만, 채색화로 남겨진 6점의 벽화 국보의 상태가 많이 손상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원본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모본(模本)이라도 하나 더 만들어 원형에 가깝게 복원 전시한다면 원작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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