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4.07 14:23

[시니어 에세이] 쑥을 뜯으며…

동박새 한 마리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오른다.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고 싶은 건가 싶어 ‘그럼 그냥 갈 수 없지’ 휴대폰의 카메라를 켠다. 그런 내가 못마땅한지 동박새는 후르르 날아올라 봄 하늘로 사라져 버린다. 동박새가 사라진 자리에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봄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노란 개나리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들꽃 방석에 앉는다. 이 봄이 아니며 내가 언제 들꽃방석에 앉아 볼거나. 앉은자리 산지사방에 겨울을 이겨 낸 쑥이 다보록하다. 다보록한 쑥에 창칼을 대자 저항 한번 없이 쓰러진다. 이미 가야 할 때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늘 걷는 둘레 길에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로 조금 들어서면 서울에서 이런 곳이 있나 싶게 오지 아닌 오지가 나온다. 일 년에 기껏해야 두어 번 쑥 뜯으러 들르는 것이 전부다. 그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곳이 봄이면 어김없이 들르는 나의 비밀의 화원이다. 쑥 한 줌이야 사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쑥 뜯으러 오는 것이 꼭 쑥국을 끓이거나 쑥개떡을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봄이면 꼭 한번은 치러야 나에게 봄이 왔음을 실감하는 의식쯤일 것이다.

쑥을 뜯다 말고 발치에 있는 냉이 꽃으로 눈길이 간다. 꽃이 피었으니 다 자랐을 텐데 키가 겨우 삼사 센티미터나 될까 싶다. 그 쪼그만 녀석이 꽃을 피워 올렸으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꽃이 거기 피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점점이 하얀 꽃잎들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 어떤 작가는 냉이꽃을 보고 ‘어제 떠난 새들이 흩뿌린 눈물 같다’ 고 말 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냉이꽃 뒤로 노란 민들레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그러고 보니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한들거리는 봄바람을 즐기느라 쑥 뜯는 것을 잊고 냉이꽃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봄에 취해 내 마음도 한들거렸던 모양인데 뭐 어쩌랴. 봄나물이야 세월아 네월아 하면 뜯는 것이 제맛 아닌가. 옛날 여인네들이야 구황식물로 쑥을 뜯었다지만 지금이야 우리가 웅녀의 자손을 증명이라도 하듯 쑥을 건강식품으로 먹는 요즘이다. 거기다 더하여 쑥을 뜯으며 삼매경에 드는 재미 또 한 빼놓을 수 없다.

봄 햇살이 내 등 어리에 올라앉아 놀다 심심했는지 등 어리를 간 지른다. 그 등쌀에 못 이긴 척 봄 햇살을 향해 돌아앉는다. 두런두런 산으로 오르는 샛길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언 듯 언 듯 붉은 등산복 차림이 나무 사이로 어리드니 곧 사라진다. 다시 정적이 흐른다. 언젠가 배우고 싶어 녹음해둔 음악을 튼다. ‘연분홍 치미가 봄바람에… ’ 가만가만 따라 부른다. 입가에 미소마저 감돈다. 예전 같으면 ‘픽’하고 돌아 설 음악이지만 요즘은 왠지 가슴으로부터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지금 노랫소리를 따라 양지바른 골짜기에 앉아 봄 행복에 푹 빠져들고 있다. 갑자기 지난날 간이역마저 보지 못하고 빠르게 달려던 세월이 원망스럽다. 변명일지 몰라도 난 늘 허기졌었다. 내게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늘 빠르게 달려야만 했다. 늘 누군가와 비교하며 내게 없는 것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 없는 것을 다 찾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어이없는 착각이었는지 요즘에야 깨닫는다. 달리고 달리다 보니 내가 왜 달렸는지조차 몰랐으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 쉬어 본다. 인도의 선승들이 하는 것처럼 들숨에 빛나는 햇살을 가슴이 깊숙이 들여 마시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내게 없었던 것을 찾아다니던 욕심을 날숨에 담아 내 보낸 자리에 무심(無心)을 담는다. 무심(無心)을 한참을 담고 담아도 모자라겠지만 언젠가는 바구니에 쑥이 철철 넘치도록 담기듯 무심(無心)도 가슴속에 철철 넘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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