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와. 누구에게나 깍듯이 인사 잘하고!”
5월이 열리자마자 드디어 첫 출근하는 아들에게 공연히 이 말 저 말을 건넨다.
“인사했던 사람에게 또 하는 것도 실례라는데요.”
벙긋거리는 아들의 얼굴이 상기되어있다. 이른 아침 햇살에 환하게 빛나는 아파트 단지의 신록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들이 출근하는 뒷모습을 부엌 창으로 좇는다. 나의 첫 출근 때가 어제 일처럼 되살아나면서 아들만큼이나 나도 설렌다.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첫 출근만 그런가. 첫 사랑, 첫 아이, 그 아이의 첫 걸음과 첫 한마디…. ‘첫’이 붙은 많은 일들이 기대로 가슴을 부풀게 했다. 특히 부모로서는 내 아이가 혹 천재는 아닐까, 풍선처럼 빵빵한 기대를 가졌을 법도 하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죽어라 일해도 힘든 줄 모르게 하는 기대였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아니 부모가 나이 들어가면서 슬슬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풍선이 후줄근해지기 시작한다.
아이만이 아니다. 가족과 친지, 일, 꿈과 희망, 내 안팎의 모든 것에서 하나 둘 기대가 접어진다. 모든 게 익숙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점점 낯선 것들을 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인이야 ‘저 하늘에 무지개 볼 때 내 가슴은 뛰노라’고 노래하지만, 보통은 신제품을 산다거나 아니면 여행에서나 가슴이 뛸까. 그 ‘약발’도 얼마 못가 시들해지고 말지만 말이다. 늙어가며 감정이 무디어진다고들 말하는데, 기대감이 줄어드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방어기제
라디오에서 언뜻 들은 사연대로 별 기대 없이 사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외국인 사위를 맞이하고 보니, 사위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없어서 서로의 서투름을 받아들여 좋다는 어느 장모의 이야기였다. 아들에게도 이랬어야 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러면 아들에겐 부담이, 자신에겐 실망이 없었으리란 의미 같았다. 산전수전 심지어 공중전이란 것 까지 나름 다 겪은 듯한 나이에 이르면 기대하지 않기야말로 실망과, 더러는 상처를 피하는 ‘방어기제’가 되곤 한다. 나부터가 그렇다.
그럼에도 안 그런 척 시침을 떼는 편이지만, 지난해 동네 도서관 강좌에서 만난 한 동년배는 방어기제를 빠르게 드러냈다. 몇 번 인사를 하고 지냈더니 어느 날은 내게 다가와 마카롱 과자 한 상자를 내미는 것이었다. 늘 홀로 다녀 외로워 보이는 여자였는데, 과자는 친해지고 싶다는 사인이었다.
“거절해도 괜찮아요. 저, 거절 받는데 익숙하거든요.” 과자와 함께 건넨 그녀의 말에 가슴이 아려서 “무슨 소릴요. 마카롱 무지 좋아해요”하며 넙죽 상자를 끌어안았다. 실은 단맛이 강해서 별로 즐겨하지 않는 과자였지만.
그런데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것이 이뤄졌을 때 기뻐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실망도 해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이가 기대를 내려놓게 한다기 보다 기대를 내려놓게 되면서 늙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이와 함께 내려놓아야할 것은 욕심이건만, 기대와 욕심 사이 딜레마로 헤매며 둘 다 제대로 붙잡지도, 내려놓지도 못하는 건 순전히 내 부족함 탓이 아닐 수 없다. 내년이면 아흔이 되는 김동길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기대에 대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하루하루 늘 새로운 것을 기대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될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매일 궁금하고 기대된다.” 그래서 젊고 활기차 보이는가 보다고 인터뷰어가 말하자 김 교수는 “기대감이야말로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대한 만큼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감을 품는 그 순간, 매 순간을 진심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삶 속에 젊음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은 기대감을 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0점부터 시작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기대는 사람에게 있어야하지 않을까. 모든 일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될진대,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어야겠고, 나 또한 기대를 받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누가 물었다. 사람에 대해 몇 점부터 시작하느냐고. 만약 0점부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점수가 깎여 내려가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100점부터 시작하면 점수가 반 토막이 날지라도 회복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망할지언정 기대부터 시작하란 얘기다.
야행성인 아들이 아침 8시까지 출근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다. 신입들을 소개하는 사내 게시판의 말풍선 안에 자기는 ‘첫 출근의 열정을 정년까지!’를 넣었다며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부푼 기대로 직장을 향한다. 하지만 나의 30여 년 경험을 통해 절감됐듯이 앞으로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들다는 인간관계에다, 소위 ‘조직의 쓴 맛’과, 승진 탈락이나 구조조정 회오리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들이 일에서, 무엇보다 사람에게서 100의 기대로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도 그렇게 시작점을 바꿔보기로 마음먹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