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장대비가 쏟아진다. 40대의 독신남 동욱은 동생들과 조카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조카들이 벗어놓고 간 옷을 빨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친정어머니가 딸을 기다리는 모습과 흡사하다. 밖에 장대비가 내리고 천둥이 친다. 올 수 없다는 동생들의 전화를 받으며 쓸쓸해하는 남자 동욱! 그 외로움에 막내 동현이 비를 타고 온 것처럼 나타난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1995년 초연을 시작하여 2015년까지 4,000회 이상의 공연기록으로 관객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소극장 창작 뮤지컬로 올해 21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음악으로 한국창작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실하게 열어준 작품으로 1996년 제2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작곡상,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작년과는 달라진 무대 분위기가 새로운 기대감을 지니게 하였다. 초연의 시작은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주제였는데 2015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형제애를 내용으로 각색되어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세 사람만의 출연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일반적인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잊고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 비처럼 촉촉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24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갑자기 가장이 된 동욱은 두 여동생과 막내 동현을 뒷바라지하느라 마흔이 되어도 결혼을 하지 못한 채 혼자 살고 있다.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으로 자신의 사랑은 지워버렸다. 장남이라는 의무감이 사랑을 포기하게 하였고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 하지만 이제 40대가 되어가는 그의 삶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치는 그의 손가락도 조금씩 그가 지쳐가고 있는 것처럼 마비가 오기 시작한다.
혼자 생일을 맞이하며 쓸쓸해 하는 동욱의 거실에 막내 동현이 나타났다. 동생들의 뒷바라지만 하는 형이 부담스러워 군 제대 후 7년간 외항선을 탔던 동현이 돌아온 것이다. 반가움은 잠시로 지난 7년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정이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 감정의 마지노선에 도달하였을 때 결혼축하 업체의 여직원 미리가 형제 앞에 나타난다.
평범하지 않은 옷차림과 행동을 하는 그녀에게 동현은 형을 위한 이벤트를 제안하고 그녀가 펼쳐가는 이상한 상황에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다. 세상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주제로 펼쳐가는 여름날의 장맛비 같은 이야기들이다.
거세고 황량한 들판에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고 여름이면 우리가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당연한 여름의 일상으로 여겨지는 장맛비처럼, 사랑하는 가족이어서 갈등하고 형제이기 때문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한 방울의 비가 가슴속에 촉촉한 습기로 사랑의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확인으로 초여름 밤에 마로니에 공원을 걷게 하였다.
삶은 선택의 이어짐이라던 누군가의 말을 생각했다. 누군가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에도 나의 선택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지닌 가슴 전부를 내어 줄 수 있음은 그 이후의 내 모습보다 내 가슴이 그들을 더 아끼고 사랑한 선택의 대상을 향하는 소중함이다.
생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으로 그 모습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그 변화에 끊임없이 감정의 변화를 이어간다. 선택의 시간 이후에 맞이해야 하는 그 쓸쓸함마저도 동욱은 아끼고 사랑한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무대 위에 들려오는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여름날의 빗속에서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어 남겨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이기심 가득한 막내가 아닌, 형 동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아끼는 성숙한 남자의 모습을 동현은 노래로 담아내고 있었다.
동현이 보낸 엽서에 쓰여있는 모르스부호 같은 짧은 단어에서 수없이 많은 언어를 읽어내는 동욱의 사랑이다. 말없이도 교감이 가능한 사랑의 언어이며 가슴으로 읽어가는 따스한 피의 흐름이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은 우물 속처럼 깊어서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던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의 말이 생각났으나 가족의 사랑은 게임이 아닌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그 의미가 상실된 사랑이 전달하는 쓸쓸한 외로움마저도 내가 있어서 지켜 낸 가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동욱은 자신의 존재가치로 자신을 위로한다.
동욱의 왼손과 동현의 오른손이 함께 이루어가는 피아노의 선율은 서로 감싸 안는 형제애의 확인이다. 나의 한 손과 너의 다른 손으로 아름다운 삶의 화음을 이어갈 수 있음은 "하나를 잃으면 얻어지는 또 다른 것"을 알아가는, 생에서 처음 인지하게 되는 너라는 형제의 모습이 내 인생의 장애물이 아닌 따스한 가슴의 교감으로 외롭고 힘든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는 사랑의 확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