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B1’ 외엔 가지 말아야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지하 1층 식품 매장에만 들려서 먹어 없앨 수 있는 것만 사는 거야. 어쩌자고 이렇게 쌓아뒀나, 미쳤군 미쳤어. 잡화류나 의류를 파는 매장엔 아예 눈도 돌리지 말아야지. 먹거리도 ‘1+1’이니 뭐니 하는 할인에 현혹돼서 냉장고에 쟁여놓지 말아야지.
연일 물건 버리기라는 중노동에 치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며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독하니 쓴맛이 아니라 시금털털한 맛의 다짐이랄까. 드디어 이사란 걸 가게 되면서 입에서 절로 새어나오는 한탄이 버무려 있어서다. 그나마 수년을 끌어오던 아파트 재건축에 따른 이주개시 날짜가 드디어 확정돼 등 떠밀리듯 가는 이사다. 아들의 출퇴근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전철 역세권에 재건축 기간 동안 살 집을 계약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살림 구조조정에 팔을 걷어붙였다.
30여 년 만의 이사인데다, 지금보다 작은 아파트로 들어가니 거의 반은 버려야할 판이다. 수십 년 묵은 짐들이 내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건 주인이 해내야할 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일별 계획을 짜놓고 부엌살림부터 손을 댈 때만해도 괜찮았다. 쓰지 않는 그릇과 머그잔, 보온 도시락, 쟁반, 찻상,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류 등 몇 보따리를 덜어냈다. 금세 빈자리가 드러나면서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욕심 때문에 못 버려
그런데 특히 책과 옷을 비롯해 구두와 가방, 잡동사니에 이르러서는 정리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문장이 세로로 인쇄된 누런 책들이 책장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왔다. 책 속에선 아주 작고 투명한 벌레까지 눈에 뜨였다. 큰 책장 3개를 1개로 줄이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버리는 쪽에 뒀다가도 간직할 쪽으로 다시 옮기곤 하느라 시간이 길어졌다. 이렇게 미련이 많아서야! 옷은 더했다. 직장생활 30년에 남은 건 옷밖에 없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고, 무슨 행사가 있다고 사고, 여기 맞춰 입을 또 하나를 사고…. 아이들을 남에게 맡기고 힘들게 일해서 번 월급을 죄다 이런데 썼나? 아냐, 그 때는 그 옷이 몸과 마음에 다 필요했을 거야. 스스로를 꾸짖기도 하고, 합리화하기도 하면서 버리려다가 말다가, 그 결정을 위해 입어보기까지 하느라 책 경우보다 시간이 서너 배는 더 걸렸다. 바쁘다고, 언젠간 입을 거라고, 아깝다고 버리는 걸 미루고 미루다 맞닥뜨린 결과였다.
“옷은 몇 보따리나 나왔어요?” 퇴근한 아들이 물었다. “저기 쌓아놨잖아.” “아니, 버릴 거 말예요.” “서너 보따리.” “엄마, 아직 멀었네요. 싹 버릴 거라더니.” 뜨끔했다. 혹시 내가 ‘저장 강박’이란 심리적 문제가 있는 이른바 ‘호더(hoarder)’는 아닐까? 여든 넘은 어르신 한 분의 푸념이 떠오른다. 장롱에는 수년간 한 번도 덮지 않은 두꺼운 솜이불이, 냉장고 냉동 칸엔 몇 개월은 지났음직한 음식이 가득하단 것이다. “여든이 낼 모레인 할마시가 왜 못 버리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보내놓고 다 버릴 작정”이라셨다.
“그러시면 안 된다, 돌아와 얼마나 놀라시겠냐”니까, “이미 버린 걸 그때 가서 어쩌겠노” 하셨다. 하긴 글쓰기에서도 자기 글을 스스로 잘라내기란 어려운 법. 다른 이의 눈에는 불필요한 대목이 금세 들어와서 단칼에 잘라주지 않던가. 그래도 나는 이번에 두툼한 솜이불 3채를 과감히 포기했다. 요즘엔 구하기 어렵다는 좋은 솜이 아까워 솜틀집에 맡겨볼까 생각도 해봤다. 한 채로 3채를 만들어 준다지만, 공임이 만만치 않았다. 장독 또한 골칫거리다. 진작 다 버리고 남은 작은 것 3개도 이사 가서 둘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