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1.31 10:18

[스페인-포르투갈 답사기] [5] 포르투갈 리스본 2

포르투칼의 수도 리스본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벨렘 탑과 공사 중인 대항해 기념탑을 둘러보고 뒷면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살펴본 후에 밖으로 나와서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먹고 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도도히 흐르는 테주 강을 건넜다.


바스코다가마 다리(Vasco da gama bridge), 4월 25일 다리

우리나라 한강보다 더 크고 넓은 테주 강 위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철제 대교가 하나 높다랗게 걸려 있는데 이름이 '4월 25일교'이다.

미국의 금문교를 연상케하는 이 4월 25일 다리(25 de Abril Bridge)는 유럽에서는 가장 긴 다리이며, 세계 5위에 달하는 17.2Km의 길이로 실제로 금문교를 만든 그 회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현재의 정식이름은 바스코다가마 다리(Vasco da gama bridge)이다.

리스본을 관통해 흐르는 테주 강은 곧 바다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만(灣)을 형성하기에 강폭이 10Km가 넘는다. 그래서 이렇게 긴 4월 25일 다리가 놓여지게 되었으며 미국의 금문교를 연상케하는 비슷한 외관을 갖고 있다. 차창 밖으로 찍었는데 다리가 매우 높게 걸렸음을 알 수 있다.

대항해 시대의 영웅 바스코다가마의 이름을 딴 이 다리가 4월 25일 다리로 불리는 것은 40년간 독재에 시달리던 포르투칼 국민들이 1974년 4월 25일, 리스본의 봄이라 불리우는 무혈 쿠테타 '카네이션 혁명'를 통하여 독재정치를 종식시킨 것을 기념하여 그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되었다. 1966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그때까지는 독재자 살라자르의 이름을 따 ‘살라자르 다리’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리스본에서 가장 큰 코메르시우 광장 (Praca do Comercio)

리스본에서 가장 큰 광장이 코메르시우 광장이다. 테주 강 가까이 자리잡은 이 커다란 광장은 원래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의 ‘리베리아 궁전’이 있던 자리인데 1755년 일어났던 대지진과 화재, 쓰나미로 인해서 궁전은 파괴되었고, 그로 인해 동 조세(Don Jose) 1세는 지진에 대한 공포로 인해 더 이상 이곳에 궁전을 건설하지 않기로 하면서 광장으로만 남게 되었다. 궁전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궁전 광장(Terreiro do Paco)’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코메르시우 광장, 동 조세 1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뒷편으로는 1755년 대지진 후 1875년까지 재건을 기념하여 세운 아우구스타 개선문이 보인다. 개선문 뒤로는 리스본 최대의 쇼핑거리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로 보행자 전용이다. 그 옛날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에는 수많은 탐험가들과 개척자들이 드나들었겠지만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노란색 건물들은 옛 왕궁지역인데 현재는 일부가 맥주공장으로 쓰인다고 한다.

폼발 후작 광장 (Praca Marpuess de Pombal)

1755년 대지진후 재건을 주도한  폼발 후작은 조세 1세의 암살을 기도한 예수회를 추방하고 재상으로 임명된 후 포르투갈의 정치를 장악하였으며 국왕 조세 1세는 그에게 무한한 재량권을 부여했다. 그는 국내산업을 발전시켰으며 활발한 대외무역과 각종 개혁정책으로 국력을 키웠는데 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의 1/3을 잿더미로 만들어 놓은 대지진이 일어나 폼발의 개혁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폼발 후작은 코메르시우 광장의 개선문 아우구스타 아치 위에 바스코 다가마등과 함께 동상이 세워지기도 하였으며, 이곳 폼발 후작 광장에는 따로이 높은 타워형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 에두아르두 7세 공원 근처에 있다.

그는 즉시 군대를 동원하여 보급품을 공급하고 피난처와 병원을 설치했다. 황폐화된 도시의 재건을 맡아서 건축가 에우게니오 도스 산투스의 설계에 따라 리스본을 최고의 도시로 발전시켜 지금도 포르투칼 국민들로부터 추앙 받는 사람이다.


호시우(Rossio) 피게이라(Figueira) 광장

페드루 4세(Pedro IV) 광장이 정식이름이지만 포르투칼 국민들 사이에서는 공동광장이라는 뜻으로 '호시우'광장이라고 한다.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중심지로 공식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행해졌고 종교재판도 열렸다. 대지진 이후 폼발 후작에 의해 계획도시로 지어진 이곳의 건물들은 지금 외양을 함부로 바꾸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제 모습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페드루 4세(Pedro IV)

서양사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스페인, 포르투칼의 국내사에 대하여는 더욱 어두울수 밖에 없는데 이곳 호시우 광장, 즉 페드루 4세 광장의 주인공 페드루 4세는 그야말로 연구대상인 인물이다.

페드루 3세의 손자, 주앙 6세의 아들로 리스본에서 태어난 그는 포르투칼 왕실이 나폴레옹 전쟁의 참화를 피해 식민지 브라질로 피난가면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냈으며, 아버지 주앙 6세가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의 왕이 되어 포르투갈로 귀국한 후에도 계속 브라질에 머물러 있었는데 포르투갈 본국 의회에서 연합 왕국을 해체하고 브라질을 식민지의 지위로 되돌리려 하자 브라질인들이 반발하였고, 그는 이에 편승하여 1822년 9월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하고 페드루 1세라는 이름으로 초대 황제로 즉위했다.

1826년 3월, 부친 주앙6세가 사망하면서 그는 페드루 4세로 포르투칼의 국왕을 겸하였으며 포르투칼로 돌아가면서 불과 7세의 딸 마리아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하여 동생 미겔이 섭정토록 하였으나 오히려 왕위 찬탈을 기도하자 1834년 미겔을 추방하였으며 자신은 그해 9월에 결핵으로 자신이 태어났던 켈루스 궁전에서 35세로 세상을 떠났다.

호시우 광장에는 종교재판이 열렸던 자리에 세워진 국립극장을 배경으로 멋진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페드루 4세의 동상이 높이 서 있다.
툭툭이로 불리우는 관광객을 위한 삼륜차. 동남아시아에만 있는 줄 알았다.
호시우 광장 바로 옆에는 피게이라 광장이 있는데 브라질의 동 페드루 1세(포르투칼에서는 4세)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리스본 투어를 마친다.

우리가 탄 버스는 아까 까마득히 올려다 본 4월 25일 다리를 건너 리스본을 뒤로하고 스페인의 세비아로 향하였다.

세계 5위, 유럽 1위의 다리에 오르자 리스본 시내가 발 아래 까마득하다.  다리를 건너니 커다란 예수상이 서 있다. 버스를 타고 휙 지나가며 보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 서 있는 예수상은 포르투칼로 부터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다는데 이 예수상은 독재시절에 브라질 예수상을 본 떠 세웠다고하니 아이러니 한 일이다.

리스본을 떠나면서 흘낏 바라 본 거대한 수도교, 유럽지역에 간혹 수도교를 볼 수 있는데 거대한 조형물처럼 아름답다.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 4월 25일교(橋)에서 내려다 본 리스본 전경.
4월 25일교를 건너자 두 팔을 벌린 예수상이 보인다. 건축물 높이 75m, 예수상 28m인데 예수 발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한때는 스페인과 함께 대항해 시대에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세계를 호령하던 포르투칼은 브라질을 포함,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1999년 마카오의 반환을 마지막으로 식민지시대는 종식되었으며, 이제는 유럽대륙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나라로 스페인과 함께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바 2017년 최고의 방문국으로 여러 매체에서 추천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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