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온 날 저녁. 창문에 커튼을 치다가 앞에 놓인 사랑초 이파리에 닿았다. 오싹할 정도로 깜작 놀랐다. 여린 잎들이 귀향에 나오는 어린 소녀 같았다.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면 안될 거 같았다. 영화를 보고 하루 종일 우울했다. 왈칵왈칵 눈물이 난다. 어쩐지 꼭 봐야만 할 것 같았다. 괜찮겠지. 영화 때문에 스트레스 받진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귀향을 관람했다. 괜찮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여린 것에 대해 이렇게 예민해질 줄은 몰랐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이야기이다. 조정래 영화감독이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소녀들’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단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동기가 되었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였다.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후원을 받지 못했다. 시민후원금과 영화배우 손 숙을 비롯해 몇 사람의 출연이 마중물이 되어 14년 만에 완성된 작품이란다. 어쩐지 편안하게 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다.
영옥할머니와 무녀 은경이가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기억을 살리기도 하고 빙의가 되기도 한다. 어린나이에 성폭행을 당하고 아버지의 살해 장면을 봐야했던 은경은 실어증에 걸린다. 진도 씻김굿을 하는 무당의 딸이 되어 신 내림을 받게 된다. 은경은 영옥할머니를 만나서 괴불노리개를 보고 할머니의 과거를 보게 된다.
14살 어린 철부지 정민이는 일본군에게 끌려가 중국 전쟁터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에 도착한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본군에 짓밟히고 매를 맞고 상상할 수 도 없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첫날 정민은 미쳐 날뛰는 일본군에게 짓밟힌다. 기절한 채 짐짝처럼 어깨에 들쳐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은 끔찍하다는 표현도 모자란다. 오빠는 징용군으로, 누이동생은 위안부로 끌려와 위안소에서 마주친 남매, 매 맞아 죽어가는 오빠를 보고 어린누이는 정신이상이 된다.
전쟁이 패한 일본군은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패악의 증거물을 없애려 소녀들을 웅덩이에 몰아넣고 휘발유로 태워버린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정민과 영옥은 도망간다. 하지만, 끝내 정민은 일본군에게 살해당한다.
영옥 할머니는 죽기 전 중국 땅에 떠도는 불쌍한 그녀의 혼을 데려오고 친구 정민이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씻김굿을 한다. 정민은 어릴 때 끌려가던 그 시절의 그 모습으로 나비를 쫒으며 집으로 귀향한다.
사람도 동물이라지만 어찌 저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간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나갔는지도 모르고 화면이 정지될때까지 있었다. 화면에는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과 시민후원자들의 이름이 끝까지 화면에 올라오고 있었다. 주제곡 가시리의 노래와 할머니들의 그림이 내 가는 발길을 잡는다. 앞으로 나비를 보면 불쌍한 소녀들의 혼이라 생각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