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4.28 10:38

봄의 따스한 햇볕이 땅 위에 퍼지기 시작하자 남쪽에서 꽃소식이 향기처럼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꽃향기를 따라 잠시 바람이 되었던 몇 날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여행이란 거리와 지역과 관계없이 잠시 나의 일상을 떠나는 것으로도 항상 기대감을 동반한다. 길을 가노라면 같은 길이라도 시간과 계절과 바람에 따라, 그리고 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항상 다른 모습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멈추는 일상의 시간이 가져오는 신선한 바람과도 같은 상쾌함이다.

어디론가 떠나서 잠시 일상을 멈추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떠날 수 있는 제주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 몇 년 전이다. 자유로운 시간이 허락된 이후 가장 쉽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제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하는 날쯤에 그곳에 유채꽃이 필까 라는 마음에 기대감이 더 크게 자리하였다. 몇 년 전 그곳에서 먹었던 회가 문제를 발생시키는 바람에 일행 다섯 명은 병원을 가야 했고, 여행사를 통하여 병원비를 환불받는 소동을 벌인 이후 제주에서의 회는 될 수 있으면 사양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되어 맛집 검색을 하여 횟집을 찾았다.

용머리 해안.
숙소로 정한 용두암 근처의 그림 하우스에서 거리가 10분 정도로 용두해변이 이어지는 중간지점에 횟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안내된 자리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로 바다에 어둠이 그림자를 내리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조용한 자리였다. 바다는 조용하였고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식해가는 느낌의 푸른 물빛은 그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출발시각이 오후 두 시로 횟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제주의 저녁은 서울의 3월하고는 바람의 느낌이 다른 따스함이 느껴졌다.

해산물과 회가 순서대로 상에 오르기 시작한다. 두툼한 생선살의 탱탱함이 입에서 쫄깃하고 달콤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성게, 전복과 함께 나온 해삼이 어찌나 싱싱한지 내 젓가락에서 뱅뱅 돌기만 할 뿐 잡히지 않는다. 십여 년 전 어느 겨울 부산 바닷가에서 먹었던 싱싱한 해삼의 맛을 항상 생각하였었는데 그 느낌이 입안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회만으로도 포만감이 가득하여 튀김과 조리된 요리는 남겼으나 뒷맛 깔끔한 매운탕과 함께 나온 게우밥은 정말 맛이 있어서 남기기 아까울 정도였다. 관광지 제주에서 1인분 5만 원으로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 사과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할 정도의 포만감으로 그 저녁 다시 해변도로를 한 시간 반가량 걸어야 했다.

"여기는 정말 회가 맛있네! 그때 이후 회는 먹기도 싫었었는데!”

몇 년 전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일행 중 유난히 심하게 식중독증세를 보였던 친구의 말이다.

"그럼 이번 여행은 맛집 찾아보기로 하여 볼까? 제주의 토속음식으로!"

그러나 다음날 우리는 그 말이 얼마나 관광지에서 어이없는 생각인지 깨달으면서 실소를 한다.

식사에 열중하는 사이 바다의 해는 어느 순간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식해가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역마끼가 살아나는지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한다.?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아도 푸른 바닷물에 일어나는 하얀 파도만으로도 충만해지는 아름다움이다. 먼 섬나라 척박한 땅이 아닌 이제는 국제도시가 되어 서울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으로 변한 제주가 아직도 내게는 낯선 곳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충분히 전달해주는 곳이다. 어눌한 언어로 동행자들과 시간을 맞추는 불편함을 감수하여야 하는 패키지 여행하고는 다른 매우?자유로운 일탈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 제주이다.

제주를 자주 찾는 이유가 그다지 비싸지 않은 대중적인 항공편이 마련되었고 구석구석 숨어있는 아름다운 장소들로 하여 우리는 보물을 찾아내듯이 제주의 매력을 찾느라 분주한 날들을 보낼 수 있어 좋다며 항상 의기투합하고 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한반도의 남쪽 끝 제주에 도착하면 자연스러운 즐거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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