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군복지관 기획에 의하여 경로당 노인분들을 찾아가, 강의로 뵙는 ‘열려라, 100세 인생’이 시작되었다. 한 달 전 쯤, 복지관 관계자를 만났다. 내가 할 수 있고, 또 적합한 프로그램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기획을 의뢰해 왔다. 경로당을 찾아 노인분들을 직접 대면하여 노인 생활 주제에 의한 강의와 대담, 토론을 하는 기획으로 매주 한 번, 두 군데를 정하여 12회 씩 만나는 계획이었다. 12회의 노인생활 주제와 요일별 시간 계획을 제출하였고, 군(郡)으로부터 결재가 나서, 오늘 그 첫 모임을 가진 것이었다.
평소에 복지관, 노인대학, 요양원 등을 돌며 노인들을 만나던 것과 다른 차원의 노인 복지 활동이 전개된 것이다. 복지관이나 노인대학을 다니는 이들을 한 그룹으로 보고, 요양원에 있는 이들을 또 다른 한 그룹으로 본다면, 경로당에 있는 이들은 강의하는 방법이나 내용을 그 중간 쯤으로 수준을 정하여야 하리라고 보았다.
사실 노인들을 상대로 12가지의 주제를 1시간 강의 내용으로 짜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첫째 시간엔 ‘생각을 바꾸자’란 주제를 정하여 과거와 달라진 노인들의 위상, 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몰아가기로 하였고, 본격적인 노인 활동에 대하여는 제일 먼저 건강 문제를 다루고, 다음은 생활의 지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취미 활동을 그리고 편협된 사고나 인식을 떠나 너른 사고활동(思考活動)을 하실 수 있도록 실생활에서 닥치는 문제들, 현대의 손주 손녀들을 대하는 법이라든가, 사기(詐欺)를 당하지 않고 현명한 소비 생활을 할 수 있는 지혜, 우리 나라의 위상, 자랑들과 가까운 우리 고장, 마을의 유래, 역사 등에 대하여도 접하실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복지관 관계자와 함께 마을 경로당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봉암 장수마을’ 표지석이 먼저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과연 전형적인 산농촌마을로 산과 내가 동리를 감싸고, 들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동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 산 속으로 좀 더 들어가면 우리 국문학의 태두(泰斗)이신 ‘송강 정철(松江 鄭澈)’ 선생이 잠든 묘택과 사당, 송강사(松江祠)가 있는 어은동(漁隱洞)이다. 우암 송시열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수가 수려한 길지를 발견하고 송강의 묘택을 이곳에 정했노라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열 명의 할머니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앞으로 12주 동안 화요일 오후 2시에 한 시간 동안 만나 뵙게 되는 분들이다. 여느 마을보다 연세가 많이 들어보이기에 알아보니, 평균 연령이 77세가 넘었다. 가장 고령인 83세의 할머니는 정정해 보였다. 과연 장수마을의 노인들답게 태도가 단정하고 품위가 있다. 나도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일시 다녔던 터라 바로 인접해 있는 초등학교 그리고 동리에 있는 동창들의 이야기부터 꺼내 친근감을 돋우었다.
전통적인 노인과 현대 노인의 위상은 너무 달라져 있다. 20대에 결혼하고 어른이 되어 어엿한 가장으로 시작하여 60대 쯤이면 일에서 물러나 노인 대접을 받고 지내던 과거엔 노인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대엔 학업, 군대, 결혼을 거쳐 30대를 지나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60대에 마치게 되면 90대, 100세 시대까지 3~40년 간의 노인생활을 보내게 된다. 실제 사회활동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노년생활로 보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흔히 하는 ‘여생(餘生)을 편히 보내십시오’ 하는 인사말을 하기가 쑥스러워지고 사회 생활하는 시기에 비하여 더 긴 ‘제 2의 본생(本生)’을 보내게 됨을 알 수 있다. ‘백수(白壽)하십시오’ 하는 인사도 99세까지 수(壽)하는 것을 가리키니 요새 유행하는 말 그대로 ‘9988234, 혹은 9988231’에도 딱 맞다. 먼저 노인들이 겪는 소위 ‘노인 4고(老人 四苦)’ - 경제, 건강, 소외(疏外), 무위(無爲)의 문제점을 덜어드리는 일이 시급하다 하겠다.
자식들을 모두 도시 직장으로 떠나보내고 노인 부부, 또는 홀로 된 독거노인이 되어 일생을 같이 해 온 동리 벗들이 모이는 경로당이야말로 노인복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복지관이나 노인대학같이 다양한 노년활동이 펼쳐지는 곳과 병약하나 시설의 도움을 받고 있는 노인요양원 노인들에 비해 정작 ‘100세 인생 시대’ 의 현명한 생활 안내가 필요한 곳은 마을마다 설치되어 있는 농촌경로당이라 하겠다.
노인들에게 친근한 이야기들, 재미있는 유머도 곁드려 양념으로 들려 주고 손발을 움직이는 체조도 하여 긴장을 풀어 주니 잘 따라 왔다. 흔히 복지 현장에서 설파(說破)되는 말대로 ‘반 컵의 물’을 보고,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실망(失望)하지 않고, 반이나 남았다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이 분들에게 심어 드리려면 많은 경로당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또 지도자, 조력자 들이 많아져 우리나라 곳곳 마을마다 경로당마다 복지의 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고, 뜻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