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마지막 장을 덮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무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은 그야말로 텅 빈 상태다. 막연히 지금은 조선 말기처럼 거대한 나라들에 둘러싸여 허우적대는 게 나라 형편임을 모르진 않는다. 그런 정도의 상식 밖에 가지지 못한 내가 김진명의 소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읽으며 소설 속 우리나라의 처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에 대한 허탈감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그 애매한 경계선에 서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책을 펴든 순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평범한 국민이 아무것도 모르고 삶을 즐기고 있을 때 사드는 어느새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종횡무진으로 나라 전체에 혼란을 주고 있다. 김진명은 사드 소설 속에서 주인공 어민을 입을 통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뉴스에서는 김천 시민이 제3의 후보지인 골프장에 사드 배치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성주에 이어 김천으로 사드 반대가 확대되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논리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가 해로울 거라는 논리에 따른 반대다. 이 반대하는 논리는 우리나라 전 국민 머리에 심어져 이제는 김천이나 성주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고장의 지명만 거론되어도 반대할 준비를 하는 셈이다. 사드가 우리나라에 배치되어 생겨날 수 있는 국가의 운명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김진명은 소설 사드에서 ‘사드는 무기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심지어 러시아까지 얽히고설킨 정치적 이해관계를 전개한다. 김진명 작가는 출간 당시 이런 말을 했다.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중국에 걸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사드를 받아 중국과의 불화를 초래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국가방위를 미국과 같이하는 처지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는 게 과연 옳은지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그럴 때 우리의 선택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다."
책을 읽고 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하는 뉴스들. 북한 핵 개발, 센카쿠 열도 분쟁, 일본의 집단자위권 재검토, 평택 미군기지 이전,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 가만히 살펴보면 미국, 중국, 일본, 북한과 우리나라와 얽히고설킨 정치적 외교적 사건들이다. 그 사건들이 소설 속에서도 등장한다. 어리바리한 나로서는 도대체 이 소설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 속 허구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작가 김진명이 이 소설을 쓰고 출판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사드 책이 차라리 안 팔렸으면 좋겠다. 이 책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둔다는 것은 한반도에 어려운 일들이 닥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슬플 것이다. 자신의 책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없는 나라의 현실적인 운명에. 나 또한 그렇다. 시력이 좋지 않아 글을 좀 읽으며 머리가 아픈 탓에 책을 가까이 두지 않았는데 단숨에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심각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간절히 기도 한다. 그의 예언이 빗나가 그저 허무맹랑한 재미있는 소설일 뿐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