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9.22 13:46

아침을 서둘러 먹은 지 10분 지난 시간. 당산역, 잠시 열린 전철 문틈으로 한강 물결이 눈부시다. 찰랑거리는 물결 햇살들이 자기 친구 강바람을 몰고 온 것. 그랬다, 함께 친구하자며. 그 친구들과 당산철교를 지났다. 변하지 않은 것은 바람결 물결에 앉은 시간 같다. 변하는 것은, 물론, 움직거리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다.

집을 이사한 지 며칠이 지났다.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집. 삶의 중턱을 훨씬 넘어 느즈막에 옮긴 내 공간이다. 죽기 전에 다른 집으로 이사하게 될지 모르는 일. 돌아보면 몇 십년을 떠돌아다녀 살았다. 한 곳에 안착할 수 없어 기웃거렸던 시간들이나를 초라하게 했던 것 같아 씁쓸하다. 이것도 내가 변한 것.

사진=조선일보DB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움직여 나를 느껴야 한다고 쓰고 또 썼건만, 나를 느끼는 순간이란 움직이는 전철 안에선 모두 너나없이 끄덕이는 생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겼건만, 이사를 좀 했다고, 내 집과 내 것을 또 구분하고 싶다니, 매번 같은 소리를 내는 숨결 소리, 아니 전철 소리조차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이런 헛웃음도 한 두 번 아닌 듯.

언제 앉았을까. 저도 모르게 앉은 전철 의자가 포근하다. 아침부터 졸리운 눈커플이 지하철 2호선 철길 소리에 제 힘을 잃는다. 억지 눈을 떠 보는 세상. 하품이 멋적게 전철 형광등들을 길게 바라본다. 제법 하품이 더 길게 늘어난다. 다리를 고쳐 앉았다.

눈을 크게 뜨고, 입에 힘을 주어 침을 삼킨다. 뭐 달리 멋진 웃음 지을 것이 없건만, 뭐 그리 맛있는 상황을 나는 만들고 싶어하는지. 그럴까. 다시 살아낸다는 일은 이러한 상황을 계속 만들어, 또 만들어지는 것을 맛보는 일일까? 억지라도 좋아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순간마다 변한 내 얼굴을 만져야 하는 일 말이다.

기다란 하품이 눈물자욱을 따라 흘렀다. 눈을 깜빡여 지나간 하품자욱을 깊게 지운다. 지금 전철에서 할 일이 더 무엇이 있을지 떠올려 본다. 하,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직 좀 더 편히 앉고 싶고, 옆 앞 사람 그냥 그대로 있으라 싶고, 이런 것이 노는 것이고, 마음껏 쉬는 것이라며, 후후, 슬며시 웃고 싶은 것을 어찌하랴.

합정역에 멈칫거려 문이 열리는 순간, 내 웃음이란 심심해서 생긴다는 다시 엉뚱함이 몸을 움칫거리게 만들다가 몸 가운데로 파고든다. 혹시, 저기 앉거나 선 사람들도 나같을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는 섬뜻함도 살갗마다 칼날을 세운다. 하필 지금, 숨을 멈추고 내 몫과 아닌 것을 따지는 순간이라니.

세상 모두는 서로 심심한만큼 무엇인가를 건드리고, 건드려 확인한 내 것을 나누는 일인 듯. 그렇다, 나든 무엇이든 건드리는 것 만큼 살아있는 듯도 하다. 변한 것을 요리조리 건드려 보고, 어떻게 꿈틀거리는지 딱딱한지 확인해 보고, 떼어내도 되는지 더 건드려야 하는지 따져 보는 오늘 전철은, 그래, 무척이나 할 일 없어 행복한 시간이다.

하, 나는 지금 끝까지 심심한가, 아니다. 살기 위해 심심한가, 그도 아니다. 집을 옮겨서 그런가, 하하, 그럴 듯하다. 그래, 허, 이렇게 심심한 지금은 이런 전철 안에선 누구에겐가 건드려져도 괜찮다. 내가 건드리거나, 누가 건드린 것을 구분하지 않고 싶으니까. 건드려져 움직이는 나를 확인하고 있으니까. 아니, 어디에서든 누구나 서로 건드려야 사니까. 이 전철도 누가 건드려 가고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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