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05 15:15

나뭇잎이 한잎 두잎 물들기 시작하는 어느 날,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장소는 용인시 처인구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에 자리 잡은‘인보자애원’이다.

사진이 처음인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수준급에 오른 사람도 있다. 실습생 11명에 선생이 4명이다. 실내 팀은 97세~100세 할머니 여섯 분을 찍어 드린다. 꽃분홍 원삼 족두리를 입고 곱게 단장한 할머니들이 표정없는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있다. 대부분 치매 판정을 받으신 분들이다. 한 분씩 찍어 드리기 위해 여러 사람이 수고한다. 휠체어에서 의자로 옮기고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해드린다.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을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표정한 그분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할머니들이 참 곱다.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를 밀고 오시며 아기처럼 “아직은 젊어서 저걸 못 입어.” 한다.

“할머니는 몇 살이세요.”

“아흔네 살.” 부러우신가 보다.

바깥에서는 80여 명 되는 분들의 사진을 찍기로 한다. 보통 80세 이상이다. 대부분 표정을 잃으셨다. 2인 1조가 되어 한 사람은 촬영을 하고 또 한 사람은 모델들의 옷매무시를 고치고 웃는 얼굴을 만들려 애쓴다.

각조마다 선생님 한 분이 따른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F 값, 조리개 수치, ISO 수치를 조절한다.

모델들이 환한 웃음을 웃을 때 순간 포착해서 찍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웃기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표정이 바뀌질 않는다. 찍은 사진을 보여 드리며 몇 장 더 촬영한다. 앞에서 춤도 추고 예쁘다고 쓰담 쓰담 해주고, "김치~", "치~즈"를 외치며 그분들의 잊어버린 웃음을 이끌어 낸다. 아기들 돌사진 찍을 때와 흡사하다.

드디어 촬영이 끝났다. 이제는 사진을 고르고 인화해서 즉석에서 사진을 뽑는다. 사진을 뽑은 다음 종이 액자에 넣어 가지런히 펼쳐 놓으니 보람 있다. 스스로 대견스럽다. 오늘만큼은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행복해 보인다. 사진을 찍어 드리며 저 길이 또한 나의 길 일 거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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