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05 15:38

벤허. 참 오랜 기간 동안 눈과 귀에 익은 단어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이 영화를 보았고 군대에 있을 때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5년마다 1번씩은 보았다. 올해 다시 만든 벤허를 보았다. 첫 벤허도 이젠 느긋한 중년의 영화 벤허가 되었다.

두 편 다른 점이 더러 있다. 배우가 다르고, 물론 제작진도 다르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 효과의 영향도 크다. 물론 음향도 더욱 입체화되었다. 등장인물이나 극의 배경, 기본 줄거리 등은 비슷하지만, 올해 벤허는 주인공 형제가 말달리기로 시작해 또 함께 말달리기로 끝나는 것처럼, 또 틈마다 소재나 줄거리가 촘촘 다르다.

'젊었을 때 보았던 영화 벤허'에서는 형 벤허와 동생 메살라가 증오의 경주를 벌이다 메살라가 죽는다. 둘은 죽음의 경계에서 서로 증오의 화살을 상대에게 날리기만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선과 악을 꽁꽁 움켜쥐는 메살라의 증오가 무척 컸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 감흥은 '그래, 증오는 나에게서 나온다. 먼저 화해하는 손을 내밀어야겠다!'라는 느낌이 젊었던 만큼 각성하는 마음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중년 나이의 영화 벤허'는 증오의 대립각을 화해의 말타기로 멋진 미래를 향하게 한다. 형과 동생의 화해는 결국 나이가 들수록 무한 경쟁보다 현실적인 대화의 장이 더 펼쳐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남은 삶은 전쟁보다 좀 더 평화롭기를 바라는바, 선과 악을 크게 끌어안는 벤허의 화해가 발걸음도 가벼운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런데 이 가벼움은 참 싱거웠다. '그래, 뭐 가진 자, 이긴 자의 먼저 화해는 당연한 거야. 평화 그것과 상관없어. 그냥 휩쓸리는 거지!'라며 먼지처럼 쉽게 사라졌다.

이렇듯, 이 영화가 다른 매듭이 짓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 같다. 첫 벤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주의 종결과 더불어 시작된 냉전 시대가 지배한 때 만들어졌다. 살아있기 위해, 상대가 먼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은 흑백논리만이 기득권을 잡는데 유리했다. 그러나 지금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자본주의의 꽃처럼 핀 올해의 영화 벤허는 보이지 않는 전쟁은 뒤로한 채 평화만이 유일한 인류의 답으로 치장한 듯하다.

어찌보면, 이 사회는 이제 제국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나 혹은 개인주의를 지나 공유독점주의가 도래하는 듯도 하다. 종교 혹은 평화나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몇몇 기득권자가 서로 모여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되니 말이다. 국가나 법은 점점 이들에 의해 유명무실해지는 일도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이번에 본 중년의 벤허가 이러한 현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인식이란 나만의 기우리라 믿어볼 수밖에.

중년 영화 벤허는 말한다. 아니 산전수전 모두 겪을수록, 그래서 자신을 버틸 자신이 있는 중년들은 말한다. "종교에 손을 힘껏 내밀어라, 힘 있는 자 곁에 가까이 붙어 있어라,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끼리 졸졸 몰려 다녀라, 그러면 내가 편해질 것이다. 이것이 나를 모든 문제와 화해하는 길이다. 이럴 때 아량을 베풀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평화로워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년 벤허 영화를 볼 수조차 없는 힘이 없는 중년들은 말한다. "힘이 없을수록 베풀고 싶어지는 걸 어쩔 것인가. 힘이 있든 또 없는 자든 같은 인간으로 보이는 걸 또 어쩌겠는가. 누구와 함께 있든, 혼자 거리를 거닐든, 그저 매 순간에 살 뿐이다. 그 순간 중 어느 하나는 내가 선택한 행복도 있다. 그래, 행복한 때가 있었으니, 또 있을 것이니, 그래서 나는 지금 평화로우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 힘이 있든 없든, 누구나 선과 악이 맞닿은 지점을 오가다 나이가 먹어간다. 그리고 그 어느 지점에 머물러 선한 쪽을 바라보다가 영원히 하늘이든 땅이든 바라보며, 그 끝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래, 내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 모두는 모두 살 권리가 있고, 자기만의 평화와 행복한 시간을 최소한 한번은 누릴 것이니까.

나는 과연, 아직도 중년 영화의 벤허처럼 이기고 베풀고 함께 평화의 말을 달리고 싶을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답이 쉽게 나올 거다. 말을 타고 가는 벤허와 메살라의 뒷모습을 본 그 누구라도 '나 먼저!' 하고 손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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