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었다. 아파트에서 바라다보이는 산등성이는 말 그대로 만추 풍경이다. 이미 단풍들과 이별한 나무도 보인다. 보이지 않던 길들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오늘내일 가을이 가버릴 것만 같아서 아파트 앞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둘레길로 오르는 계단은 온통 낙엽들이 점령해 버렸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었으니 당연하다.
둘레길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꺾어 드니 마주 오던 분이 눈인사를 건네고 스쳐 지나간다. 가끔 둘레길에서 마주치는 노년에 드신 분이다. 나는 몇 걸음 걷다 말고 뒤돌아본다. 문득 그분의 뒷모습이 궁금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적당한 긴장감이 풍기면서도 어딘가 넉넉해 보이는 모습이다. 계절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가끔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품이 좋아 보이면서도 접근하기 힘든 범상한 기운도 느껴지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 뒤돌아보니 걸어가는 그분의 뒷모습에서 풍기는 모습도 참 좋다.
시중에 떠도는 명언 중에는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한 권의 책이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가 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가 함께 만든 사진 에세이에서는 ‘뒤쪽이 진실이다’ 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뒷모습이야말로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 작품 ‘뒷모습’ 속에는 흑판에 글씨를 쓰고 있는 소녀, 파도를 바라보는 가난한 연인들, 작은 항구의 아랍 여인들, 키스하는 남녀, 등이 굽은 할머니, 등을 굽힌 발레리나 등등이 담긴 사진과 그 사진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 보는미셸 투르니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뒷모습이 진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 앞모습이야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화장 기술이 발달한 덕에 어떤 모습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얼굴 하나만 가지고도 여러 모습을 만들 수 있다. 억지 미소를 만들 수 있고 친절한 척할 수가 있고 진실인 척 꾸밀 수가 있다. 그렇지만 멀어져 가던 노년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뒷모습은 꾸밀 수 없다. 그러므로 진실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
요즘 우리는 어떤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경악하고 있다. 그 이중성에 비열함에 분노하고 있다. 그가 앞에서 보여 주었던 너그럽고 솔직함에 반하여 그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우연한 기회에 보이게 된 그의 뒷모습은 우리가 바라던 모습과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에 배신감으로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거린다. 물론 우리가 어리석어 그가 보여 준 앞모습만 보았지 뒷모습은 보지 못한 탓이다.
프로필(profile)이라는 말이 있다. 약력이나 경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다른 말로는 옆 모습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인지 서양의 동전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옆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고대의 벽화에서도 주로 사람의 앞모습보다는 옆모습을 많이 그렸다. 앞모습과 뒷모습을 반반씩 보여주고 있으니 그 사람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애써 꾸미지 않은 모습이기에 깊이가 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깊이가 있는 사람인지 얕은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사람의 진가는 돌아서 가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살다가 뒤를 돌아서 갈 때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비록 그 뒷모습이 쓸쓸하더라도 비열하거나 이중성으로 산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