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아, 발아! 너희에게 말한다. 난, 너희보다 높은 곳에서 너희를 내려다보며, 우쭐대기만 하고, 더러는 비웃고 명령하고 으스대기만 하던 나의 입이란다. 오늘은 너희에게 그간 미안했단 이야기를 하고, 고마움을 전달하려고 하니, 늦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라며, 이를 기록으로 남긴다.
먼저, 손아! 너는 내게 맛있는 음식을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가 많았니? 밭에 나가 낫을 들어, 풀을 깎고, 그 뜨거운 햇볕을 쬐며, 땅을 파지 않았니? 또 장을 보며 맛있는 먹거리를 고르고, 많이 사면 결국 그것도 너에 의해 운반되어 오지 않았니? 모두가 너를 위한 것은 없고 나를 위한 것들임을 깨달았다. 결국, 네겐 돌아가는 것 없이 내게 줄 것을 마련하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니?
그러니 직장에서 농장에서 어디서든지 너는 일만 하고 결국 네가 벌어들인 그 수입은 몽탕 내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장만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니? 결국, 내가, 입이 즐겁고 자 한 일이란 걸 깨달았단다. 아니, 음식을 입에 넣는 것조차 무엇이 힘들다고 또 너의 손을 빌려서 해야 했으니, 너야말로 날 위해 희생만 하고 있구나. 참으로 미안하다. 늦게나마 미안함을 전한다.
그리고 발아! 얼마나 많은 거리를, 얼마나 많은 땅을 밟으며 걸었니? 그 퀴퀴한 운동화 속에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면서 종일 갇혀 얼마나 생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었니? 그래도 묵묵히 견뎌준 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 발로 땅을 딛고 삽질을 하고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녔으니, 얼마나 매일매일 고통이 심했겠니?
이제 전과는 전혀 다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심정으로 너희를 대하겠다. 우선, 매일 아침 너희에게 인사를 전하마.
손아! 오늘도 날 위해 바삐 움직여주어야겠다. 그러나 전과 같이 무조건 부려 먹으려고 하지마는 아니하마. 이젠 네가 일할 때마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마.
고맙다. 발아! 어디든 날 데려다 주는 발아! 너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발아, 고맙다.
그리고 저녁엔 너희 둘에게 또 인사하마. 종일 수고 많았다. 이제 좀 편히 쉬려무나. 따뜻한 물에 너희를 푸근히 쉬게 해 주마. 깨끗이 닦아 광채가 나게 해 주마. 너희는 충분히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고 칭찬 받을만 하단다. 애 많이 썼다.
손아, 발아, 고맙다. 그리고 약속하마. 손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는 일은 전혀 하지 않겠다. 남의 것을 함부로 허락 없이 가져오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겠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고 정당한 소득을 얻어 우리 모두를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
그리고 발 부끄러운 일도 하지 않겠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함부로 간다거나, 홧김에 발을 함부로 써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하지 않겠다. 수족같이 부려 먹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귀중하게 아껴주겠노라고 약속하마.
한가지 꼭 이야기할 것이 있다. 너희가 마련해주는 그 먹거리를 먹으며, 맛이 없다느니, 딱딱하다느니 불평했던 것을 사과한다. 그리고 내게 들어오는 것들은 너희 수고를 빌어 깨끗한 것만 골라 먹으면서도, 입에서 나오는 것 중에는 더러운 것들 즉, 화풀이, 욕설, 핀잔, 저주, 비웃음을 쏟아냈으니, 너희 보기가 여간 부끄럽지가 않다.
이제 맹세코, 너희가 깨끗한 음식을 마련해 주었듯이, 다시는 입에서 그 더러운 것들, 더러운 말들을 뱉어내는 일이 없게 하겠다. 어느 책에 보니, ‘사람에게는 눈이 둘, 귀가 둘, 입이 하나 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조금 말하라는 것이다’ 라고 한 말이 있다. 수다쟁이, 주책바가지, 더러운 입을 경계하는 말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말을 줄이며, 겸손한 자세로,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자 한다. 믿고 보아주기 바란다.
앞으론 ‘입만 가지고 산다’ 는 말은 절대 듣지 않겠다. 입으로만 사는 것도 모자라, 턱으로 이래라저래라 ‘까딱까딱’ 지시하는 일은 더더욱 없게 하겠다. 팔다리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하지 않겠다. 너무 많이 너희를 혹사하여 관절에 이상이 생기고 통증에 시달리는 것이 못내 미안하고 죄송하다. 의사선생님께서, 자세가 좋지 못하느니, 혹사했느니, 제대로 관리를 잘 못 했느니 하시는 말씀을 듣고,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구나.
손과 팔을 지탱해주고 움직여주는 지렛대인 어깨가 고통스럽다. 이제, 자세도 제대로 하고, 집중적으로 몰아서 하는 일도 없애고 오로지 너희 손과 발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힘쓰겠다. 이제 편한 시간을 가지려무나. 아니, 치료에 집중할 테니, 제발 옛날의 원기를 되찾아주기 바란다. 손을 씻고 발을 씻는 일에, 그리고 따스한 물에 수시로 담가 피로를 풀어주도록 하겠다. 너희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먼 곳 병원이라도 찾아가고 진력을 다 하겠다.
그간 수고 많았다. 이제 8년 벼농사를 마치며 다시 손발에게 감사한다. 나의 손아, 발아! 너희 수고로 내가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음을 다시 감사한다. 이제 불평도 하지 않겠다. 건강해다오. 오래 나와 함께 해다오.